해양수산부와의 부처 간 갈등을 빚을 정도로 논란이 됐던 선사들의 운임담합에 대해 공정위는 이날 ‘불법적 공동행위’라고 결론 내리고 시정명령과 함께 약 9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조성욱 위원장은 이번 제재로 관행적으로 이뤄진 불법적 담합 관행을 근절하고 화주와 소비자 등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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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위원장은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이번 해운담합 건을 처리하면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사자성어를 많이 생각했다”며 이 같이 말했다.
논어에 나온 ‘화이부동’은 화합은 하되 서로 다름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해운담합과 관련해 해운당국인 해양수산부와 해운업계의 입장, 경쟁당국인 공정위의 입장이 엇갈린 것을 두고 한 말로 풀이된다. 앞서 해수부와 해운업계는 문제가 된 공동행위는 기존 신고된 주된 공동행위 19건은 해수부에 신고를 했고, 문제가 된 120여건의 협의는 신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공정위는 23개 국내외 선사의 해상 운임담합이 한~동남아 항로 컨테이너 해상화물운송 서비스 시장에서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12개 국적선사와 11개 외국적선사는 2003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각종 운임을 120차례에 걸쳐 합의했다. 문제가 된 120차례 운임합의는 대부분 최저운임(AMR) 합의로, 해운업계에서 이미 신고했다는 18건의 운임회복(RR)합의와는 서로 다른 운임인상 방식이라는 것이 공정위 입장이다.
최근 해운협회 측에서 공정위가 해운담합 조사를 하면서 일본과 독일, 프랑스 선사를 비롯해 총 20개 해외 선사를 누락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담합 초기인 2003년~2011년 이후에 합의에 가담한 증거를 찾지 못해 제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조 위원장은 “공정위는 이번 사건뿐 아니라 다른 사건에 있어서도 국적과 무관하게 행위 사실을 포착하면 조사하고 있다”며 “일본과 유럽 등 국적의 일부 선사가 2003년~2011년에는 운임을 결정하는 화합에 참석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2011년경 이후에는 어떠한 합의에도 가담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공정거래법상 처분시효는 접수일로부터 7년으로, 위반행위 종료일로부터 7년이 지날 경우 과징금과 시정조치를 부과할 수 없다. 해당 외국 국적 선사들은 사건이 신고된 2018년으로부터 7년 전인 2011년 이후 합의에 가담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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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15년에 걸쳐 장기간 동안 이뤄진 정기선사들의 운임담합에 대해 공정위가 최초로 제재한 사건이다. 이번 제재에 따라 해운법 등 다른 법에서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공동행위더라도 절차상에서 요건을 충족하지 않을 경우 공정거래법에 따라 제재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됐다.
조 위원장은 “그동안 해운시장에서 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 불법적으로 이뤄진 선사들의 운임 담합 관행을 타파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이번 조치를 통해 불법적인 운임담합으로 인해 국내 약 24만 개 화주 기업들과 소비자들의 피해가 예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 위원장은 이어 “운임 담합이 해수부 장관에 대한 신고와 화주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최소한으로 이뤄짐으로써 해운당국의 관리가 실질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위원장은 “해운법 개정과 관련해서도 해수부와 실무 차원에서 협의를 통해 잠정적으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 현재 농해수위에 계류 중인 개정안에 해당 내용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