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에다 한·중 FTA까지..영세 자영업자의 한숨

"한·중 FTA로 中 저가품 국내시장 잠식 우려"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中시장 공략" vs "말처럼 쉽지 않아"
"中 추격속도 빨라질 것..긴장 늦춰선 안돼" 경고
  • 등록 2014-11-24 오후 2:16:26

    수정 2014-11-24 오후 2:16:26

[세종=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언니, 나도 이제 중국에서 물건 떼다 팔아야 할까봐.” 남대문에서 가방 장사를 하는 상인 김모씨는 다른 상인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옆에 앉은 박모씨에게 말했다. 박씨는 “그래. 요즘 한국에서 물건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데. 만들 곳도 점점 줄어들고. 나랑 다음 달에 같이 광저우 한 번 가보자”라고 대답했다. 또 다른 상인 백모씨는 “우리나라 기념품이라고 파는 것들도 전부 중국에서 만들어 온다더라”라고 말했다.

영세한 중소기업 및 자영업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1년여 동안 엔저로 힘든 상황을 겪어왔는데,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실질적 타결’ 소식까지 전해진 탓이다. 앞으로 값싼 중국제품이 국내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 22일 남대문시장에서 만난 김씨는 “정부가 한·중 FTA 협상을 어떻게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크게 관심도 없다. 내가 파는 물건이 보호 대상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엄청난 중국 물건들이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것이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관세가 있든 없든 여기저기서 중국 물건을 국내로 수입하는 경우 좋은 물건을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하나 둘씩 같이 들고 들어오게 된다. 그렇게 품목이 늘어나고 수입도 늘어나면서 경쟁이 시작된다. 그게 장사다”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그동안 국내에서만 물건을 생산해 왔다. 높은 품질의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인식으로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엔화약세로 1년이 넘도록 주문이 없는 실정이다.

김씨는 “일본 주문이 끊기면서 더 이상 국내에서 물건을 만드는 건 힘들 것 같다. 중국에 팔아볼까 했는데,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중국인들은 가격이 비싸다며 사질 않는다”며 “장사를 그만둘 수는 없고 앞으로는 중국에서 물건을 떼다 팔까 생각중이다”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고부가가치 제품을 내다 팔 수 있는 13억 인구의 중국 시장이 열렸다며, 중소기업들이 나서서 10년 뒤를 보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같은 중소기업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니다. 정부가 말하는 중소기업은 중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을 만큼 경쟁력이 있는 중소기업이고, 우리가 평소에 말하는 중소기업은 대부분이 영세하거나 자영업자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루이비통 같은 고부가가치 품목을 만들면 된다고 하는데, 좋은 디자인을 만들거나 장인급 물건을 만들려면 그만큼 좋은 인력에게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며 “단가가 높아져서 가격 경쟁이 안 될 게 뻔하고 아무리 품질이 좋게 만들더라도 팔릴지조차 알 수 없다. 현실은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데 10년 동안 투자만 하라는 얘기로 들린다”고 덧붙였다.

옆에 있던 박씨도 거들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시장 많은 상인들이 중국에서 물건을 만들겠다며 공장을 지으러 나갔다”며 “국내 하청공장 대부분이 망하는 등 한국경제 성장을 주도했던 국내 생산기반이 이때 무너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가방을 예로 들며 중국이 한국 제품과 비슷하게 스스로 만들기 시작했을 때 원단은 중국산을 쓰면서도 품질이 좋고 고급스러운 다른 부속자재들은 한국에서 비싸게 수입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마저 중국 내에서 값싸게 생산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에 갔던 대부분이 수십 년 노하우를 몇 년 만에 중국에게 빼앗기고는 한국으로 되돌아왔는데, 국내에선 재기할 수 있는 여건조차 사라진 뒤였다”며 “한·중 FTA가 체결됐다니 저가 물건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나마 남아 있는 생산기반마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앞으로 중국에 수출이 늘어난다고 하는 중소기업들도 아직은 중국이 한국에서 물건을 사갈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파는 물건이 많아질수록 따라잡히는 속도도 그만큼 빨라진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긴장을 늦춰선 안된다”고 당부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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