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고쟁이 씌워놔도 찍는다고?"..균열 커지는 '보수 텃밭'

홍준표 대표, 대구서 보수 '동남풍' 몰겠다지만
박근혜 탄핵 이후 균열 확대된 '보수 텃밭' 민심
  • 등록 2018-01-09 오전 11:53:33

    수정 2018-01-09 오후 1:53:35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 3월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에서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8일 대구를 찾아 “대구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며 보수지지층의 집결을 호소했다. (사진=연합뉴스)
[대구=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고쟁이를 씌워놔도 대구는 지지해준다고 하는 데 아이가? 진절머리가 났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방선거 필승 의지를 다지며 전국순회 첫번째 방문지로 대구를 찾은 지난 8일. ‘보수의 텃밭’인 이곳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한가지 분명한 점은 ‘보수당이니까 찍어준다’는 무조건적 지지는 사라졌다는 느낌이다.

특히 ‘대구가 흔들리면 대한민국이 흔들린다’며 보수층 결집을 호소한 홍 대표의 외침은 공허해보였다.

“찍어주면 뭐하나”vs“그래도 대구는 보수”

이날 동대구역에서 만난 택시기사 조성기(63)씨는 “대구에서도 자유한국당 지지도가 많이 떨어졌냐”는 기자의 질문에 “진절머리가 났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수성구갑이 지역구로 지난 총선에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뽑았다는 조씨는 “(한국당을) 맨날 뽑아주면 뭐하나. 고쟁이를 씌워놔도 뽑아준다고 우습게 보기만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처음부터 두루두루 뽑았어야 했는데 보수당만 뽑아주니 대구엔 지역기반도 없는 사람을 막 내려보낸다”며 “김부겸은 열심히 하려고 하는게 보이니 대구시장에 나온다면 이 사람을 뽑아줄 생각”이라고 했다.

대구시내 전 지역구를 보수정당이 차지하는 게 당연할 정도로 보수정당 텃밭이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대구에서도 보수정당 지지세는 상당부분 꺾인 듯 했다. 지난 20대 총선 때부터 가시화된 이 같은 균열이 점점 더 벌어지는 모양새다.

이는 먹고사는 문제와 무관치 않다.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은 24년 연속 전국 꼴찌를 기록하며 제일 못 사는 도시로 추락했다.

대구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에서 만난 정연욱(55)씨는 “예전에 광주에서는 무조건 저쪽(더불어민주당)을 뽑아줬듯 대구에서는 무조건 보수당을 찍어줬다”며 “그런데 맨날 자기들끼리 싸우기만 하고 돌아오는 게 뭐가 있나. 이제는 홍준표나 문재인이나 누가 되도 다를 게 없단 생각”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집계한 1월 1주차 정당지지도 조사(1월 2일부터 5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2010명 대상)에 따르면 대구·경북 지역의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26.8%로 더불어민주당(39.1%)에 비해 12%포인트 뒤처졌다.

탄핵정국이 한창이던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 한국당(당시 새누리당) 지지도는 7.3%포인트 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 역시 비슷하게(6.4%포인트) 상승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래도 대구는 보수”라며 여론조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도 나왔다.

서문시장에서 인테리어소품 가게를 하는 김봉재(67)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잘 하는 것 하나 없는데도 지지율이 76%라고 하는 걸 보면 전부 젊은 사람들한테만 물어보는 모양”이라며 비꼬았다. 그는 “우리나라는 핵 2개만 날라오면 끝이 나는데 대화를 하고 있는게 말이 되냐”며 “홍준표 대표가 100점은 아니지만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수집을 운영하는 김순녀(62·여)씨는 “박근혜 탄핵 때 돌아서 문재인 대통령을 찍은 시장 사람들이 후회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자꾸 올리는 건 서민을 죽이는 정치”라고 말했다.

보수정당에 실망느낀 2030…정당보다 인물에 방점

젊은 층은 좀 달랐다. 실제 이날 대구에서 만난 2030세대는 지역의 오랜 기반인 보수정당 지지에 실망감을 나타내면서도 크게 미련은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회사원 이원일(28)씨는 “개인적으로 안보관이나 정보관이나 자유한국당과 더 맞는데도 지난 총선때 김부겸 의원을 뽑았다”고 했다. 이씨는 “홍준표 대표는 보수를 지지한다고 말하기 부끄럽게 만든다. 지금 보수로 나서는 인물들 중에는 믿을만한 사람이 없어 지지를 보내기 어렵다”고 밝혔다.

공무원인 김지수(37·여)씨는 “몇년간 타지생활을 하다 돌아왔는데 주변친구들이 보수정당에 등돌린 것을 보고 놀랐다”며 “부모세대에게 듣고 자란 게 있었지만, 박근혜 사태 때 결정적으로 돌아선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씨는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소속 권영진 시장이 당선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이에 상관없이 후보마다 정책을 보고 판단할 계획이다.

이념보다 직접적인 이득이 되는 정책을 우선시하는 성향도 뚜렷했다.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윤종일(27)씨는 “어느 정당이 어떤지 잘 알지도 못하고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다”면서 “지난 대선 때 문재인에 표를 준 건 공무원을 늘린다는 정책을 내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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