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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스님은 1954년과 1956년 금오스님을 계사로 각각 사미계와 비구계를 받았다.
그는 1961년부터 10여 년간 금산사 주지를 맡아 불교 정화운동에 나섰다. 30대 때에는 조계종 개운사 주지, 총무원 교무·총무부장, 중앙종회의장 등 종단의 주요 소임을 맡아 활동했다.
미국 등지에서 한국 불교 방향을 고민했던 그는 성찰의 결과로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불교계 책무로 받아들였다.
이후 그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불교인귄위원회 공동대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실업극복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을 맡으며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스님은 1994년 총무원장 의현스님이 3선 연임을 강행하다 반발에 부딪혀 물러난 뒤, 출범한 조계종 개혁회의에 참여해 종단 개혁을 이끌었다. 그해 치러진 총무원장 선거에서 재선되며 종단 중앙 무대로 복귀했다.
그는 재선 총무원장 때 다방면에서 불교의 대사회운동을 추진했고, 이때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도 설립했다. 하지만 1998년 총무원장 연임에 나섰다가 종단이 4년 만에 다시 파행으로 치닫는 빌미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의 장례는 5일간 금산사에서 조계종 종단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26일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