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은 올 상반기 영업손실이 14조3033억원을 기록했다고 12일 밝혔다. 지난해 상반기 적자 1873억원보다 76배 많은 액수다. 1분기 7조8000억원 영업적자에 이어 2분기에도 6조5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이 기간 매출액(31조9921억원)은 올 4월 전기요금 인상 등에 힘입어 전년보다 11.5% 늘었으나 영업비용(46조2954억원)이 전년보다 무려 60.3% 늘었다. 영업손실률도 44.7%에 이르렀다. 매출의 절반 남짓이 손실로 이어진 유례 없는 적자다.
에너지 가격 고공 행진 여파다. 한전 상반기 영업비용을 보면 유연탄, 액화천연가스(LNG) 등 (발전) 연료비가 14조7283억원으로 전년보다 86.3% 늘었다. 전력구입비도 18조9969억원으로 두 배 이상(104.1%) 늘었다. 발전 및 송·배전설비 취득 등 기타영업비용은 12조5702억원으로 7.8%(9119억원) 늘어나는데 그쳤다. 전력 생산 원가 급증이 ‘어닝 쇼크’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한전의 LNG 구매가격은 지난해 상반기 평균 1톤(t)당 57만7700원에서 올 상반기 134만4100원으로 2.3배 늘었다. 유연탄은 같은 기간 t당 99.1달러(약 12만9000원)에서 318.8달러로 3.2배 늘었다.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사들이는 전력 구입비, 즉 전력 도매가도 대폭 올랐다. 그 기준이 되는 계통한계가격(SMP)은 지난해 상반기 1킬로와트시(㎾h)당 78.0원에서 올 상반기 169.3원으로 2.1배 늘었다. 결과적으로 한전은 이 기간 전력을 140.1원/㎾h에 사서 110.4원/㎾h에 판매했다. 제품을 기타 운영비를 뺀 원가보다도 21% 싸게 판매한 셈이다.
한전은 발전 연료비와 전력 구입비 급증에도 정부의 가격 억제 정책으로 이를 판매요금에 반영하는 데는 실패했다. 국내에 전력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공기업으로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발 에너지 쇼크의 국내 비용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셈이 됐다.
여기에 지난해 국내 발전·송배전 설비투자와 기타 운영비 4조9000억원까지 반영할 수 있었다면 올 상반기 적자의 절반 이상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게 한전의 설명이다. 정부는 천연가스는 설비투자를 당장 요금에 반영 못 하더라도 추후 정산토록 규정하고 있으나 전기는 이 같은 규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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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면 한전은 올 하반기에도 유례없는 적자 행진을 이어갈 전망이다. 주요 증권사는 한전이 올해 연간 영업적자 23조원(평균치)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통상 1년 중 전력수요가 가장 많은 3분기는 한전의 ‘대목’이지만, 밑지면서 파는 올해는 적자를 키우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한전은 정부와의 협의 끝에 7월 요금을 5원/㎾h(약 4.5%) 올렸으나 발전 연료비·전력 구입비 상승분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한전이 전력을 살 때의 기준가격인 SMP는 7월 들어 다시 급등하고 있다. 6월 129.72원/㎾h까지 내렸으나 7월엔 151.85원/㎾h, 8월 들어선 12일 현재 206.58원으로 4월에 이어 다시 200원 선을 돌파했다.
정부는 발전 연료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원자력발전 비중을 높이고, LNG를 줄여나간다는 계획이지만, 발전 비중 조정은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만큼 단기간 내 큰 폭 조정이 어렵다. 현재 에너지원별 국내 전력공급 비중은 석탄(유연탄) 31%, 원자력 30%, LNG 28%, 신·재생 등 기타 11% 순이다.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발전은 실제 연료비가 드는 건 아니지만 한전이 해당 전력을 살 땐 SMP에 연동한 단가를 적용하는 만큼 에너지 가격이 오를수록 한전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위기를 맞은 한전은 비용 절감 노력과 함께 정부와 전기(소매)요금에 원가를 반영하기 위한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한전은 지난 5월18일 발전 자회사를 포함한 전력그룹사 기준 6조원 이상 규모의 자구노력 계획을 발표했으며 올 상반기 자산 매각(4000억원)을 포함한 1조8000억원 규모의 자금 여력을 확보했다. 하반기 중 한전기술(052690) 보유지분 14.77% 매각, 필리핀 SPC합자회사 및 세부 석탄화력발전 지분 매각을 통해 추가 자금 확보에도 나선다. 이 같은 자구노력 자체는 영업손실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주지 못하지만, 차입금 조달 규모와 부채비율을 줄여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보겠다는 것이다.
한전 관계자는 “이 같은 자구노력과 함께 정부의 ‘공공기관 혁신 가이드라인’에 따른 회사 전반의 경영효율화를 지속 추진할 것”이라며 “아울러 정부와 원가주의 원칙에 입각한 전기요금 정상화와 관련 제도 개선을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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