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맛보기] ‘MB정부 2인자’ 이재오, 왜 복면을 쓸 수밖에 없었나?

이재오 17일 국회 정론관서 복면 쓰고 파격 기자회견
늘푸른당 난상토론…이재오 고민 끝 최종결심
엇갈린 반응, “대선이 장난” vs “진짜 짠하다”
지지율 0%대 군소후보의 눈물겨운 홍보전략
  • 등록 2017-04-18 오전 11:54:53

    수정 2017-04-18 오전 11:54:53

[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국회 정론관은 여야 정치인들의 주요 활동무대입니다. 언론을 매개로 국민들과 간접적으로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기자회견을 할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입니다. 주요 정당의 대변인들 또한 마이크를 잡고 주요 정치적 현안에 대한 논평을 발표합니다. 기자회견 이후에는 정론관 바깥 복도에서 ‘백브리핑’이라는 이름 아래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입니다. 그런데 4월 17일 오전 10시 30분께 국회 정론관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주인공은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대선후보였습니다.

이재오 후보의 등장은 사실 이상할 게 없었습니다. 대선 공식선거운동 첫날인 17일 국회 정론관을 찾아서 본인의 정치철학과 비전, 공약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상황이 달라진 건 기자회견 도중에 이재오 후보가 갑자기 복면을 꺼내들 때부터입니다. MBC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복면가왕’ 퍼포먼스를 패러디했습니다. 이 후보는 기자회견 도중 파란색 복면을 실제 착용하고 발언을 이어나갔습니다. 순간 카메라 플래시가 불을 뿜었습니다. 기자회견을 듣고 있던 취재 기자들 사이에서는 상반된 반응이 나타냈습니다. 일부 기자들은 “대선이 장난이냐”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일부 기자들은 “그래도 MB정부 2인자였는데 짠하다”는 반응도 나왔습니다.

참고로 이 후보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쓴 복면의 이름은 ‘파란왕자’라고 합니다. 제작기간은 보름, 구입 비용은 90만원 정도인데 늘푸른한국당은 시간도 없고 재정도 넉넉지 않아서 2박3일간 임대했다고 합니다. 비용은 5만5000원이었다고 합니다.

이재오 복면 퍼포먼스 화제…본질은 개헌 필요성 홍보

이 후보의 기자회견이 보도되면서 인터넷공간도 시끌벅적했습니다. 이데일리의 ‘이재오의 파격제안, 文·安에 ‘얼굴 가리고 복면토론’ 제안’ 등을 포함해 이 후보의 복면토론 제안을 다룬 기사들이 쏟아진 후 네티즌들은 수많은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이날만큼은 이 후보 역시 대선 양강후보인 문재인·안철수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관련 기사에는 댓글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국민에게 웃음을 주는 할아버지” “허경영만 못하다” “개그맨 시험 쳐보세요” “웃프다” “녹조라떼 드세요” “참신하다” 등등의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지금은 원외 군소후보에 불과하지만 이재오 후보의 경력은 자못 화려합니다. 대표적인 수식어만도 한둘이 아닙니다. 박정희정권 당시 민주화 투사, 김대중(DJ) 저격수, 5선 국회의원, 국민권익위원장, 특임장관 등등. 잘 나가던 정치경력 뒤에는 쓰라림도 있습니다.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중당 후보로 낙선, 2006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패배, 2008년 18대 총선 낙선, 2016년 20대 총선 낙선 등이 대표적입니다.

기나긴 정치역정을 되돌아보면 이재오 후보의 전성기는 누가 뭐래도 이명박 정부였습니다. 이재오 후보는 ‘이명박 vs 박근혜’가 맞붙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친이계 좌장으로 경선전을 진두지휘했습니다. 경선 승리 이후에는 530만표 압승을 지원하면 정권교체의 일등공신이 됐습니다. 이후 남부러울 것 없는 정치인 이재오의 시절이 이어졌습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전후로는 적잖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공천을 받았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서 공천 탈락했습니다. 이재오 후보의 정치인생은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이 후보가 다시 일어선 것은 늘푸른한국당 창당입니다. 1945년생인 이 후보는 우리나이로 73세입니다. 이 후보는 정계은퇴를 선택해도 되는데 지난해 신생 정당 창당이라는 모험에 나섰습니다. 돈도 조직도 없이 맨주먹으로 일어섰습니다. 이 후보는 왜 도전에 나섰을까요. 오랜 측근인 김해진 전 특임차관에게 건넨 이야기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김 차관, 내가 창당을 하려는 것은 내가 아직 못 다가본 정치적 길이 있기 때문이네. 민중당을 해산하고 신한국당에 입당하고 그 이후 5선의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당론에 묶여 내 정치적 소신을 다 펴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필요하고 옳다면 해야지. 그것이 국회의원 5선이나 한 나의 남은 책무 아니겠나. 정치에서 100% 실패란 것은 없네. 설사 개헌이 안 되더라도 내가 걸어간 만큼은 성공한 걸음이 될 수 있지 않겠나. 개헌은 될 것이니 나라를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한번 해보세.”

이재오, 군소후보 한계 딛기 위해 ‘복면 기자회견’ 수용

이 후보는 MB정부 시절 개헌 전도사로 불렸습니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장 이후 7년째 분권형 개헌을 주장해왔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반대로 개헌은 현 정부에서 금기어였지만 이 후보는 굴하지 않고 개헌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5월 9일 차기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에는 어딜 가더라도 ‘개헌’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삽니다. △분권형개헌 △행정구역개편 △정부구조 혁신 △동반성장 △남북자유왕래 등 늘푸른한국당의 5대 핵심정책 역시 이 후보의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문제는 이 후보가 지지율 0%의 군소후보라는 점입니다. 늘푸른한국당은 현역 의원 단 한 명도 없는 원외정당입니다. 이 때문에 이 후보는 17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도 옛 동료 의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한마디로 이 후보의 정책과 공약이 국민들에게 매우 전달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사실 이 후보가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분권형 개헌’만을 이야기하고 갔다면 흔하고 흔한 기자회견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재오’라는 이름 석자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일도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MB정북의 막강실세이자 2인자로 불렸던 이재오 후보는 어쩌다가 복면을 쓰고 기자회견을 했을까요. 그 역시 복면 기자회견이 조소와 비아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당초 ‘복면 기자회견’은 늘푸른한국당 내부 전략회의에서 일주일 전쯤에 나온 아이디어였습니다. 당직자들 사이에서는 찬반 양론이 팽팽한 난상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이 후보 역시 복면 기자회견 보고를 받고 고민을 이어갔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가족토론까지 했다고 합니다. 가족들 역시 모양새가 우스꽝스럽다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후보의 결론도 부정적이었습니다. “내가 장관을 두 번 했고 5선의원 출신인데 아무리 선거가 어렵더라도 복면까지 쓰고 나갈 수 있느냐. 쇼로 비춰질 수 있다”며 주저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복면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원외정당 소속의 지지율 0%대의 꼴찌후보라는 한계를 뛰어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분권형 개헌 공약의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강력한 퍼포먼스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습니다. 늘푸른한국당 고위 당직자는 복면토론 제안이 포함된 기자회견문과 그 내용이 빠진 기자회견문을 둘 다 준비한 채 초조하게 기다렸습니다. 이 후보는 고민 끝에 17일 아침 어렵게 결심을 했습니다.

70대 노정객이 공개적인 장소에서 망신을 각오하고 ‘복면’을 썼습니다. 언론과 대중의 눈과 귀를 끄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개헌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 후보 스스로가 체면을 버리고 망가짐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복면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분권형 개헌)에도 눈길 한 번 줘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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