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법안 톺아보기]④순환출자 규제의 `딜레마`

대선레이스 펼쳐지며 각 후보진영 재차 순환출자 화두
대기업 7곳 순환출자 남았지만 실질적의미는 현대차뿐
순환출자 규제가 자칫 `과잉규제`논란 블랙홀될 수도
  • 등록 2017-02-02 오후 12:19:00

    수정 2017-02-02 오후 12:19:00



[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2012년 대선에서 여권내 가장 뜨거웠던 경제민주화 쟁점은 순환출자 규제였다. 대선을 한 달 앞둔 그해 11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후보와 ‘경제민주화 아이콘’으로 영입한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간 이 문제를 놓고 갈등의 골은 깊어져만 갔다. 신규순환출자만 금지하고 기존순환출자는 용인하겠다는 박 후보에 맞서 김 위원장은 강하게 반발했다. 결국 박 후보의 입장대로 공약은 발표됐고 둘 사이는 결별수순에 들어갔다.

대선레이스…또다시 재현된 순환출자 화두

다시 대선레이스가 펼쳐진 지금. 순환출자는 재차 화두다. 야권 잠룡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난달 22일 대선출마선언문에서 “문어발 확장에 악용되는 순환출자제도를 뿌리부터 고쳐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도 출마선언문을 통해 “재벌 대기업에 공정한 시장경제 규칙 의무 부여할 것”이라며 보수진영내 대표적 경제민주화론자로의 철학을 담았다.

이미 지난 대선 때 순환출자 금지를 공약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0일 발표한 재벌개혁 공약에선 순환출자 규제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다. 그러나 세부 내용은 단순한 순환출자 규제 이상의 강도 높은 공약을 내놓았다.

남은 순환출자 7개그룹…실질적 의미 있는 곳은 현대차뿐

순환출자는 정확히 말하면 현재 금지돼 있다. 2014년 7월부터 개정 공정거래법이 시행되면서 신규순환출자와 함께 기존순환출자를 강화하는 것도 금지됐다. 남은 쟁점은 법 개정 이전부터 존재하는 순환출자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가운데 순환출자 고리를 1개 이상 가지고 있는 곳은 7개 그룹. 하지만 대부분은 순환출자가 지배구조상 큰 의미 없다. 삼성그룹만 살펴봐도 삼성물산(028260)과 제일모직 합병 전후로 핵심 출자 고리를 정리하면서 순환출자는 이제 큰 이슈가 아니다. 삼성화재(1.37%)·삼성SDI(2.11%)·삼성전기(2.61%) 3개 계열사가 보유중인 물산 지분을 정리하면 남은 순환출자를 해소한다. 이 지분이 없어도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 삼성물산은 경영권을 심각히 위협받을 정도는 아니다. 순환출자가 더 이상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척추’가 아니란 의미다. 순환출자의 대명사격인 롯데그룹도 숫자만 현란하게 많을 뿐 그룹 지배력에 미치는 영향은 ‘척추’도 아니고 ‘손등의 피부’ 정도다.

7개 그룹 가운데 순환출자가 지배구조상 ‘척추’역할을 하는 곳은 현대차(005380)현대중공업(009540)이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기업분할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지주회사 전환을 선언했다. 현대중공업의 기업분할은 현재 남아있는 단 하나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겠다는 의미다. 이 고리는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기업분할이 완료되면 현대미포조선이 가진 현대중공업 지분(7.98%)을 팔아도 그룹 지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결국 마지막 남은 순환출자는 현대차그룹 한 곳 뿐이다. 따라서 기존순환출자를 금지하겠다는 것은 현대차에게 ‘너희들도 이젠 순환출자를 끊으라’는 의미다. 경제입법은 해당기업 현실에 따라 민감도가 다르다. 보험업법(보험사 자산평가 시가로 계산)과 상법개정안(인적분할때 자사주 신주배정 금지)은 삼성그룹, 여신전문금융업법(자기자본 150% 초과 계열주식 보유금지)은 미래에셋그룹이 가장 민감하다. 순환출자는 현대차그룹의 민감도가 가장 높다. 순환출자금지법은 곧 현대차법이다.

현대차그룹 지분구조도. 얼핏 복잡해 보이는 그림과 달리 가운데 파란색선이 나타내는 현대차→기아차→모비스→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가 핵심이다.(그림= 유안타증권)


현대차만 남았기에 더더욱 ‘딜레마’…경제법안 블랙홀될 수도

기존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법안은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9월 대표발의했고, 지난달 11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제안설명이 있었다. 이 법안은 3년간 유예기간을 주고 기존 순환출자를 모두 해소하라는 내용이다. 3년 내 해소하지 못하면 시정조치, 과징금부과, 해당주식 의결권 금지 조치 등을 할 수 있다.

이 법안에 법리적 다툼이 끼어들 틈은 없다. 순환출자는 이미 법적으로 2014년 공정거래법 개정과 함께 ‘종언’을 고했다. 현재 시행중인 공정거래법은 ‘순환출자가 소유구조를 왜곡하는 제도여서 금지한다. 다만 기존출자까지 한꺼번에 금지시키면 부작용이 있으니 자율적으로 해소하도록 하자’는 것일 뿐이다. 결국 지금까지도 해소못한 그룹들에겐 법 취지에 맞도록 강제로 순환출자를 해소시킬 것인지, 아니면 자율적으로 해소할 시간을 더 줄 것인지 정치적 판단만 남은 것이다.

실질적으로 영향받는 기업은 현대차만 남았기에 ‘딜레마’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정치권에선 순환출자 규제가 ‘재벌개혁의 상징’ 처럼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경제적 측면에선 현대차 외에는 의미없는 이 논쟁 하나 때문에 다른 법안까지 ‘과잉 규제’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순환출자 규제가 마치 ‘블랙홀’처럼 상법개정안 등 다른 경제법안까지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인다면 오히려 개혁은 커녕 논쟁만 더 키우는 셈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단순히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내는 것에만 방점을 찍을 경우 규제에 쫓기는 기업들은 가장 비용이 덜 드는 고리만 찾아서 끊는 방법을 택할 것이고, 과연 이러한 방법이 진정한 지배구조 개선이냐는 딜레마도 있다. 롯데그룹이 대표 케이스다.

롯데가 2015년 6월말 416개 순환출자 고리를 6개월 뒤 67개로 대폭 줄이는 과정에는 단 4번의 소규모 지분거래만으로도 가능했다. 또 현재 남은 순환출자 고리 67개 가운데 롯데쇼핑(023530)이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사 대홍기획 지분을 정리하면 22개 순환출자가 한꺼번에 없어진다. 이러한 소규모 지분을 정리하면 현란했던 순환출자 숫자는 줄어들어도 롯데 지배구조가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보긴 어렵다.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현황. 정의선 부회장은 2015년 현대글로비스 지분 일부를 팔아 현대차 지분을 샀고, 남은 글로비스 지분은 자발적 보호예수기간 2년이 지났다.


글로비스 보호예수 종료…현대차에게 주어진 선택은

정치권에서 재현된 순환출자 이슈와 별개로 현대차의 지배구조는 관심이다. 순환출자로 지탱하는 단 하나의 그룹이고 승계이슈를 감안하면 현 지배구조를 영원히 가져가는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한 시가 1조4000억 원어치 현대글로비스(086280) 지분(23.3%)에 대한 보호예수가 이번 주에 종료된다. 2015년 초 현대글로비스 주식 블록딜을 시도했다 한차례 실패한 이후 재시도때 2년간 자발적 보호예수를 내걸었던 물량이다.

이와 연계해 몇 가지 시나리오가 시장에서 거론된다.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과 기아차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교환해 순환출자도 끊고 지배구조 개편을 도모할 것이란 분석이다. 다만 두 지분 가격차이가 2조원 이상 나기 때문에 맞교환이 어렵고, 일부만 먼저 교환할 경우 재차 현대글로비스 주가가 출렁일 수 있다는 점이 관건이다. 기아차와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합병해 지주회사를 만들거나, 현대차나 현대제철까지 한꺼번에 분할해 통합 지주회사를 만들 것이란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이는 주주동의(주총)를 거쳐야하고, 특히 지주회사는 금융계열사 현대카드·캐피탈을 소유할 수 없다는 문제도 걸림돌이다. 예단하긴 어려운 현대차의 행보다.

기존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법안(공정거래법 개정)을 논의할 국회 정무위원회·법안소위 정당별 구성(자료: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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