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했던 우리 딸"…SPC 유족이 공개한 고인의 생전 메시지

유족 "안전장치가 없었는지 설명해주는 사람 없더라"
"노동자 안전 담보되지 않고 만들어진 건 사지 말아야"
  • 등록 2022-10-21 오후 5:55:20

    수정 2022-10-21 오후 5:55:20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다정하고, 친절하고, 정말 버릴 게 하나도 없는 그런 딸만 바라보고 살았는데…지금 내 반쪽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에요.”

SPC 계열사인 SPL 평택 제빵공장서 소스 배합기에 끼여 숨진 20대 여성 노동자의 어머니가 20일 충남 천안의 한 납골당에서 진행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생전 딸과 나눈 채팅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생전에 고인이 어머니와 나눈 대화 (사진=유족 제공)
생전 대화 속에서도 고인은 잦은 격무에 지친 심경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지만, 혹여나 어머니가 걱정할까 늘 다정함을 잃지 않았다.

유족이 공개한 대화 속 고인은 “저 8일 야간에 출근해야 한다는데요ㅠㅠ”라며 야간 소식을 알렸다. 이에 어머니는 “갑자기ㅜㅜ?”라며 “내일 퇴근하고 엄마랑 토킹(이야기) 좀 하자. 고생해 딸”이라며 애써 고인을 격려했다.

고인은 야간 근무 때도 ‘항상 행복하세요’ ’사랑해요’라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어머니에게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를 빼먹지 않는 상냥한 딸이었다. 그 이후 대화는 이뤄지지 못했다. 고인이 지난 15일 새벽 6시 15분께 ‘12시간 맞교대’ 야간작업을 하다 기계에 끼여 숨졌기 때문이다. 야간작업 10시간째였다.

고인의 빈소에는 허영인 SPC 그룹 회장 등을 비롯한 많은 회사 관계자들이 다녀갔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곳에서도 고인이 왜 죽어야 했는지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어머니 A씨는 “왜 그 기계에는 안전장치가 없던 건지, 왜 2인 1조라는 매뉴얼은 안 지켰던건지 누구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어요”라며 “기계에 안전장치 그거 하나 다는 게 힘든 건가요? 노동자를 기계로 보는 게 아닌 이상 어떻게 그런 기계에서 일을 하라고 했을까요”라고 물었다.

이어 “사고 잦은 곳을 누가 보내고 싶겠어요. 딸은 집에서 걱정할까봐 말을 안 한 것 같은데…”라며 “이런 걸 진작 알았더라면. 회사 간다고 했을 때 어떤 회사인지 좀 더 알아볼 걸”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씨는 SPC에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최소한의 근무환경을 만들어 달라”며 “노동자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환경에서 만들어진 건 사지 말아아죠. 우리 딸이 정말로 마지막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당부했다.

생전 고인은 고등학교에서도 베이커리과를 전공할 만큼 빵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장 비정규직으로 파리바게뜨 매장 제빵사로 취직했지만, 과도한 업무 탓에 7개월 만에 그만뒀다. 그럼에도 고인은 빵을 만들고 싶어 파리바게뜨에 빵 반죽 등을 납품하는 SPL 공장에 입사했다. 고인의 생전 꿈은 자신의 매장을 여는 것이었다고 한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 등 임직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SPC 본사에서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관련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편 이날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서울 양재본사에서 “지난 15일 저희 사업장에서 발생한 사고와 관련해 다시 한번 고인과 유가족께 깊은 애도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국민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거듭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특히, 사고 다음날, 사고 장소 인근에서 작업이 진행된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설명될 수 없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며, 평소 직원들에게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저의 불찰”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SPC는 안전관리를 강화를 위해 향후 3년간 총 1000억 원을 투자해 그룹 전 사업장에 대해 한국안전기술협회·대한산업안전협회 등 고용노동부로부터 지정 받은 외부 안전진단 전문기관을 통해 ‘산업안전보건진단’을 즉각 실시 하겠다며 재발방지책을 내놨다.

그러면서 △안전시설 확충 및 설비 자동화에 700억 원 △직원들의 작업환경 개선 및 안전문화 형성에 200억 원을 투입하고 사고가 난 SPL은 영업이익 50%인 100억 원을 산업안전 개선에 투입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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