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속의 10조 시장'..연예인보다 잘나가는 中 왕훙

[베이징= 이데일리 김대웅 특파원]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한 여성이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화장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새로운 화장법에 대한 소개도 곁들이며 다양한 스타일을 연출하고 실시간 댓글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문의도 받고 있다. 방송이 시작된 지 30분이 채 지나지 않아 화면에 나타난 제품 주문 수치가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한다.

중국인 대학생 류모씨(22)는 틈날 때마다 최근 론칭한 여성전용 쇼핑몰에 들어가 왕훙(網紅)이 진행하는 화장품, 패션, 맛집 관련 방송을 시청한다. 류씨는 최근 한국 여행을 갔을 때도 블로그에서 소개하는 한국의 유명 맛집과 쇼핑장소, 구경거리 등을 찾아다녔다.

갈수록 커지는 왕훙경제..中 新쇼핑문화

1~2년 전만 해도 몇몇 패션 분야 블로거 스타가 탄생하는 수준이었던 왕훙 문화가 최근 영역을 가리지 않고 중국 전역에서 급속도로 퍼지며 거대한 경제 규모를 형성하고 있다. TV홈쇼핑의 경제 규모를 넘어선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중국에서 가장 많은 팔로어를 보유한 왕훙 파피장.

왕훙은 중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높은 인지도와 영향력을 가진 스타 블로거를 일컫는 말이다. 인터넷 상의 스타 BJ(Broadcasting Jockey)라는 의미로도 통한다. ‘왕뤄훙런(網絡紅人· 인터넷 스타)’의 줄임말로, 관련 업계는 팔로어 수 50만명 이상을 거느린 블로거를 왕훙으로 분류한다.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과정에서 왕훙의 실시간 방송과 같은 새로운 콘텐츠들이 중국 쇼핑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아이리서치가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와 협력해 최근 발표한 ‘2016 왕훙생태백서’에 따르면 올해 왕훙이 판매를 통해 직접 창출하는 경제 가치만 580억위안(약 10조4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됐다.

왕훙 업계의 현황과 왕훙경제 확장세에 대해 처음으로 전면적 분석을 시도한 이 백서는 왕훙 문화가 모바일 인터넷 시대를 맞아 더욱 조직화, 전문화, 상업화 돼가고 있다며 이들이 창출하는 경제 가치가 앞으로 계속해서 고속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왕훙 100만명 시대..‘왕훙경제연구소’도 탄생

특히 최근 대규모 자본이 이들과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왕훙이라는 자원을 쟁탈하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이 과정에서 콘텐츠와 플랫폼도 더욱 다양해질 것이란 분석이다. 왕훙경제의 급속한 확장에 따라 최근 ‘왕훙경제연구원’도 생겨났다. 이 연구소에 따르면 현재 중국에는 약 100만명의 왕훙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표적 왕훙인 파피장의 웨이보 팔로어 수는 1500만명에 달할 정도다. 상위권 왕훙들이 올리는 매출은 연간 수백억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중국 SNS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왕훙이 연예인과 같이 두터운 팬층을 보유함으로 인해 그들의 언행이 팬들에게 모델이 되고 있다”며 “모방 욕구가 구매로 이어지도록 하는 연예인 광고와 비슷한 효과가 모바일 상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도 주목..韓기업 수혜도

중국 자본시장에서도 왕훙은 주요 키워드로 떠올랐다. 중국 시장정보업체 윈드는 지난해부터 왕훙 관련 상장사들의 주가를 취합해 이른바 ‘왕훙경제지수’를 만들었다. 중국 궈타이쥔안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왕훙경제가 중국 온라인 의류 쇼핑시장 전체의 17%에 달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들은 왕훙의 활동 영역이 패션 분야를 넘어 온라인 게임과 여행, 아기용품 등까지 확대되면서 경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점에 특히 주목하고 있다.

왕훙경제의 발전은 우리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일례로 아모레퍼시픽의 샴푸브랜드 ‘려’는 최근 중국 미용 분야의 웨이보 왕훙 10명을 초청해 모발관리 등 서비스를 제공한 뒤 면세점과 쇼핑몰 등의 이벤트를 통해 웨이보에 후기를 포스팅하도록 했다. 두달 후 려의 중국 매출은 1300만위안의 기록을 달성하며 전년 대비 7배 가까이 폭증했다.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들 역시 왕훙의 블로그가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중국 블로그에 소개된 숙소, 맛집, 쇼핑장소 등은 대부분 매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