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소 잃고도 외양간 방치…허송세월 3년 암호화폐 정책

2017~2018년 광풍 겪고도 정부 '무대응' 일관
정치권도 2030 票만 의식…관련 입법 흐지부지
무분별한 ICO…'알트코인' 불법 시세조정 빈번
  • 등록 2021-04-26 오후 3:57:03

    수정 2021-04-26 오후 3:57:03

[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한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고, 거래소 폐쇄까지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18년 1월, 당시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암호화폐가 사실상 투기나 도박과 비슷한 양상으로 거래되고 있다며 관계 부처 합동으로 강력한 규제 법안 마련 및 시행 구상을 발표했다. 이에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일명 ‘박상기의 난’으로 부르며 거세게 반발했고,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거래소 폐쇄 반대 청원이 쇄도했다. 정치권에서도 정부가 블록체인이란 4차 산업 혁명의 핵심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투자자들을 옹호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그해 초 가격이 정점을 찍은 뒤 급락세를 거듭했고, 투자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관련 대책 논의도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비트코인 이미지. (사진=이데일리DB)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암호화폐 거래소의 폐쇄 가능성을 거론한 발언은 시간을 3년 전으로 되돌린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은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13만명 넘게 동의한 것도 박 전 장관 사례와 판박이다. 은 위원장은 지난달부터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에 따라 오는 9월까지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아 등록하지 않는 업체는 폐쇄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금법은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을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이전될 수 있는 전자적 증표’로 정의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는 연간 250만원을 초과하는 소득에 대해선 20%의 양도소득세(양도세)도 부과할 예정이다.

문제는 특금법이 암호화폐에 대한 명확한 정의 및 규정이나 투자자 보호 등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아니란 점이다. 암호화폐가 범죄나 테러 자금으로 쓰이지 않도록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가 정한 권고기준을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제정된 것이다. 특금법 시행과 양도세 부과 결정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를 바라보는 은 위원장의 시각이 3년 전 박상기 전 장관과 다르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현 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해 취해온 일관된 태도는 ‘무관심’과 ‘무대응’이다. 이는 은 위원장이 스스로 ‘어른들’이라고 칭한 관련 정책 결정권자들이 암호화폐를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징표’라고 평가 절하한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굳이 정부가 나서 관여하지 않아도 내재가치가 없는 암호화폐는 광풍이 지나가면 저절로 소멸할 것이라는 판단이 결과적으로 3년 전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정치권에서도 2030세대의 표(票)를 의식해 여·야를 막론하고 암호화폐 투자를 옹호하는 발언이 연이어 나오고 있지만, 정작 지난 3년 간 투자자 보호 방안을 입법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 정부가 암호화폐 상장(ICO)을 전면 금지한 뒤 검·경이나 금융당국 등도 관리·감독에 손을 놓으면서, 해외거래소에서 상장한 뒤 국내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수많은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암호화폐)이 불법 시세 조정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도 현실이다.

정부는 특금법 시행을 계기로 지금이라도 암호화폐 관련 투자자 보호 방안 및 제도 정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모든 소가 다 도망갈 때까지 외양간을 고치지 않아, 외양간 자체가 필요없도록 만드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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