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美보호무역 우려”…금리인상 복병 부상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 오른쪽)와 토머스 조던 스위스중앙은행 총재가 20일 오후(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에서 만나 두 나라간 통화스와프 계약서에 각각 서명한 이후 악수를 하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이데일리 김정현 기자] 미국의 보호무역정책이 향후 한국 기준금리 인상의 복병으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통상압박이 예상보다 거세지자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까지 나서 “걱정을 떨칠 수 없다”고 우려하면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0일(현지시간) 스위스 취리히 스위스중앙은행 본점에서 스위스와 통화스와프 계약서에 서명한 직후 간담회에서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이 강해질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그 예상을 웃도는 수준이라 상당히 눈여겨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보호무역정책이 미국을 중심으로 점점 강해지고 있다”며 “수출이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인데 수출이 꺾이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이) 예상을 뛰어넘게 강하게 나온다면 우리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이 총재가 미국 보호무역정책을 강도 높게 우려하자 시장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국발(發) 악재가 국내 수출기업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올리기는 어렵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이주열 총재가 미국 보호무역정책의 심각성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면서 “시장 일각에서는 올해중 금리인상이 한 번도 어려울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지만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위원은 “미국발 악재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면서 “상반기 중 금리인상이 쉽지 않을 거라고 봤었는데, 이에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올해 중 한미 금리역전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내 금리인상을 네 번까지 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이 총재도 “(미국 금리인상이) 예상보다 빠를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한미 기준금리가 같은 수준인데, 미국만 금리를 연달아 인상할 경우 국내에서 외국인 자금이 급격히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우리나라도 기준금리를 따라 올려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 국내 경제 펀더멘털만 보면 금리를 올릴 상황이 아니더라도 떠밀려 금리를 올리게 되는 상황이 올 수 있어서다.

때문에 억지로 금리를 올리는 상황이 되기 전에 스스로 금리인상에 나설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과 미국의 금리가 역전된다고 바로 외국인 자금이 이탈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하지만 금리 차가 1% 넘게 벌어진다면 상황이 달리지기 때문에 사전에 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