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것 아직도 이해 안 돼”

수원지법, 2일 화성사건 재심공판 이춘재 증인 출석
  • 등록 2020-11-02 오후 3:14:25

    수정 2020-11-02 오후 3:14:25

[수원=이데일리 이용성, 정병묵 기자]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경기 화성지역 일대에서 발생한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인 이춘재(57)가 사건 발생 30여년 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화성연쇄살인사건 당시 경찰 수사도 받았지만 어떻게 자신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았던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춘재의 고등학교 재학시절 모습.(사진=연합뉴스)
수원지방법원 형사12부(재판장 박정제)는 2일 오후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서 이춘재를 증인 신분으로 출석시켜 신문을 진행했다. 재심 재판부는 이춘재가 증인 신분이기 때문에 이날 언론에 그의 얼굴 사진, 영상 촬영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1시 39분쯤 파란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등장한 이춘재는 반삭발한 상태였다. 남은 머리카락은 희끗했고 이마에 굵은 주름 한 줄이 있었다. 공개된 젊은 시절 사진처럼 눈썹이 반 잘려 있는 모양이었고 눈매는 날카로웠으며 큰 귓불을 갖고 있었다. 그는 흰색 헝겊 마스크를 착용하고 입장했지만 추후 일회용 마스크로 고쳐 썼다.

이춘재는 군 제대 직후 1986년 아동 강간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처벌받지 않았고,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선상에서도 당시 빠져나갔다. 해당 사건 외에 단 한 번도 경찰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털어 놨다.

이(李)는 “검문 당한적은 있었다. 그 당시 형사들이 거의 뭐 (화성 사건으로) 까이다시피 했기에(비난받았기에)”라며 “저는 뭐 검문 과정에서 긴장하게 만든 특별한 상황은 없었다. 민증 없어서 파출소 한 번 간 적 있었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자신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저도 아직도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제 주변에 난 사건인데, 제가 은폐하거나 숨기고 그러면서 돌아다닌게 아니라 수사가 진행됐다”며 “그러면 한 번쯤 의심을 받는, 그런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단 생각을 했는데 수사관 몇백명이 왔다갔다 했는데 딱 빠져나왔다”라고 강조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윤모(53)씨를 범인으로 검거했다. 이후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형됐다가 20년을 복역한 뒤 지난 2009년 가석방됐다. 이춘재가 자백하자 윤씨는 지난 1월 자신이 연루된 8차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이춘재는 화성 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청주에서 처제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1995년 7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한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7월 최종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화성과 수원 등지에서 이춘재가 총 14건의 살인사건과 9건의 강간사건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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