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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 현상이 1년반째 지속되면서 서울 명동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 사이에선 새로운 풍속도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인 관광객 1명이 하루에도 여러 차례, 1000엔 단위로 환전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원화로 1만원도 안 되는 금액이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찍은 후 그 액수만큼만 ‘알뜰히’ 환전하는 현상. 엔저 현상 이후 명동 상가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토미나가 미츠토시(28세) 씨는 “물가가 비싸다보니 그 때 그 때 필요한 만큼 바꿔쓰는 게 여행경비를 아낄 수 있을 거 같아 조금씩 환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달러-엔 환율은 109엔대까지 치솟으며 엔저현상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엔화가치가 빠르게 하락하다보니 원-엔 환율도 30일 종가기준으로 964.8원에 그쳐 두 달새 38.33원 떨어졌다. 그 덕에 환전상들만 바빠졌다. 한 환전소 관계자는 10분에 한 번꼴 환매매율 현황판을 수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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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가치 하락은 환전상들도 곤혹스럽게 한다. “노노노 온리 투싸우즌엔(아니요. 2000엔만요).” 10000엔짜리를 내밀고 2000엔만 환전해달라는 한 일본인 관광객의 말에 환전소 주인 신교성(57)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신씨는 1000엔짜리 8장을 카운터에 올려놓으며 “많이 바꾼다고 해서 수수료율을 낮춰줬는데도 고작 2000엔만 바꿨다. 이러면 몇 십원 남지도 않는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또다른 환전상 박경자(58)씨의 환전소에는 30분간 5명의 일본 손님이 드나들었다. 바꿔간 금액은 한국돈으로 57만2000원. 1인당 평균 11만원가량이다. 박씨는 “요즘엔 1000엔 단위로 바꿔가는 손님도 있다”고 전했다.
음성적인 거래도 나타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환전상은 “최근들어 하루에 1∼2명꼴로 엔화를 대량으로 구하려는 사람이 찾아온다”며 “사려는 액수가 너무 커 다른 환전소로 보낸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이날 취재 중 한 한국인 여성이 쇼핑백에 만원짜리 묶음을 담아 사설 환전소에서 거래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환전소에서 화폐를 다량 구매한다는 것은 단순한 환차익을 노린 경우라기 보다는 오히려 불법도박 등 음성적인 거래와 관련이 깊다는 게 외환당국의 설명이다.
일본인 빠진자리에 중국인, 아직은 역부족
그러나 중국인 관광객은 별로 돈이 안 남는다는 게 환전상들의 전언이다. 엔화에 비해 위안화 수수료가 싸기 때문이다. 관광호텔 주변 환전소에서 일하는 강 모(57)씨는 “1위안을 받으면 168원 주는데 딸랑 1원 남는다.”며 “중국인 관광객이 많아져 바빠졌긴 하지만, 위안화는 돈이 별로 안된다”고 토로했다. 환전상 신씨는 “일본인이 빠진 자리를 중국인들이 채우고 있지만, (일본인 관광객이 주류를 이뤘던) 예전 수준의 수익을 회복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