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 제대로 못 담는 GDP…개편 논의되나(종합)

이주열 "GDP 신뢰성 점차 하락하고 있다"
소득만 측정하고 창출과정 안 따지는 GDP
2%대 전망 매몰된 현실에도 경종 울린듯
금리인하 압박 차단 해석…채권시장 약세
  • 등록 2016-05-25 오후 7:55:47

    수정 2016-05-25 오후 7:55:47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경기도 성남에 사는 직장인 김모(36)씨. 김씨는 매일 아침 큰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그러나 그는 복직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지금은 육아휴직 중이어서 그나마 낫지만 회사를 다닐 경우 하루 동선이 잘 짜여지지 않아서다.

김씨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외벌이도 생각하지만 주거비를 생각하면 쉽지 않다”고 했다.

다만 맞벌이인 김씨 부부의 국가경제 기여도는 외벌이의 두 배 이상이다. 당장 손에 쥐는 소득이 두 배다. 직장 생활에 따른 외식비와 교통비, 어린이집 보육비 등도 각 주체의 국내총생산(GDP)을 높인다. 김씨가 은행에서 받은 대출도 부동산 붐에 일조한다. GDP가 각 ‘소득’의 양만 측정하고 그 창출 과정의 질은 따지지 않다보니, 경제생산의 객관적 수치와 경제상황의 주관적 인식간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김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면 오후 내내 학원을 몇 군데씩 보내야 한다고 하더라”면서 “차라리 지금이 더 낫다”고 걱정했다. 김씨처럼 높은 GDP 기여도가 정작 삶의 질과는 괴리감이 있는 경우는 허다하다.

소득만 측정하고 창출과정 안 따지는 GDP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GDP 만능론’을 경계하고 나선 건 GDP 증가율, 다시 말해 성장률이 마치 우리 경제의 명운을 결정하는 듯한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 총재는 GDP에 대해 “GDP 0.1∼0.2%포인트 차이가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신뢰성이 점차 하락하고 있다”고 했다. 산업계 학계의 경제 전문가들과 가진 경제동향간담회에서다.

GDP는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가 한해동안 생산한 부가가치를 더한 수치다. 생산의 중요성 때문에 ‘경제지표의 왕’으로 인정받고 있다. 경제가 좋아진다는 건 생산자가 상품 혹은 서비스를 더 생산하고, 소비자가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뜻이다. 이 총재도 “GDP가 일국의 경제규모와 성장속도, 물질적 번영 정도를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지표인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다만 GDP의 한계가 분명하다는 지적도 그간 끊이지 않았다. 김씨 같은 맞벌이는 GDP를 이중으로 높이지만 삶의 질 측면에서는 논란이 있는 게 대표적이다.

이 총재가 지난 2008년 당시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아마르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 등이 참여한 ‘경제성장과 사회발전 측정위원회’를 직접 언급한 것도 주목된다. 이 위원회는 GDP가 경제성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비판으로 출범했다.

이 위원회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양보다는 주거 건강 교육 같은 질적인 개념으로 전환 △총소득에서 가계소득으로, 평균소득에서 중위소득(소득으로 매긴 총가구 중 정확히 한가운데를 차지한 가구의 소득)으로 전환 등이다. 경제지표가 삶의 질 측정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총재가 이날 “인터넷 빅데이터 활용 등을 통해 GDP 추정방법을 개선하고 생활수준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새 지표를 개발할 것”이라고 한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이번을 계기로 GDP 개편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을지도 관심이다.

2%대 전망 매몰된 현실에도 경종 울린듯

이 총재의 언급이 주목받는 건 최근 경제계 기류와도 관련이 있다. 국내외 기관들은 최근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낮추고 있는데, 이에 너무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통화기금(IMF)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금융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LG경제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등은 올해 2%대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고, 그래서 저성장 고착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경제를 양적 지표만 갖고 따지는 게 바람직하느냐는 주장이 나온다”면서 “(GDP로 경제를 판단하는 식으로) 시각을 좁히는 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GDP 증가율을 각 정권의 경제성적표와 동일시하는 경향마저 있어왔다. 박근혜정부가 ‘나홀로’ 3%대 성장률 전망치를 고수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금리인하 압박 차단 해석…채권시장 약세

이 총재의 발언이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차단한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도 있다. KDI는 전날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하며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근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선제적인 인하 기대감도 채권시장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날 채권시장이 하루 만에 약세(채권금리 상승) 전환했다. 이 총재의 언급을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으로 받아들이는 기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채권시장에서 시중금리 지표역할을 하는 국고채권 3년물 금리는 전거래일 대비 1.7bp(1bp=0.01%포인트) 오른 1.461%에 거래를 마쳤다. 국고채권 5년물 금리도 1.4bp 상승한 1.553%로 거래됐다. 국고채권 10년물 금리 역시 1.8bp 올랐다.

현물뿐 아니라 선물시장도 약세였다. 3년 국채선물(KTBF)은 전거래일 대비 7틱 하락한 110.29에 거래됐다. 10년 국채선물(LKTBF)은 19틱 내린 129.51을 나타냈다. 틱은 선물계약의 매입과 매도 주문시 내는 호가단위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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