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노벨문학상' 고통받는 목소리에 손들어줬다 (종합)

벨라루스 출신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수상
고통받는 이들 인터뷰한 '목소리 소설'로 주목
역대 노벨문학상 여성 수상자 14명으로 늘어
  • 등록 2015-10-08 오후 9:25:54

    수정 2015-10-08 오후 9:47:25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억지로 꾸미지 않았다. 전쟁과 원전사고 등을 통해 고통과 희생을 강요받은 여성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옮겼을 뿐이다. 허구에 기대어 진실을 말하는 작가가 아닌 현장을 기록하던 기자였기 때문이다. 자신도 남성이 만들어놓은 폭력적인 구조 속에 위험을 느끼던 여성이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벨라루스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신문기자 출신이다.

알렉시예비치는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소설가와는 달리 증언을 바탕으로 한 일종의 르포 소설로 주목을 받았다. 저자로서 이름을 세상에 알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1985)는 2차대전 중 참전한 여성 200명을 인터뷰해 그들의 독백으로 책장을 채웠다. 전장에서 처음 생리를 했을 때의 난감함, 널부러진 시신들을 밟고 다시 사선을 넘을 때의 혹독한 심경 등이 생생하게 담겼다.

1986년 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로 일컬어지는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 이후 피해자들을 만나 그들이 고발하는 원전사고의 참상과 고통을 담담하게 담았다. 10년 동안 이어진 작업은 1997년 ‘체르노빌의 목소리’로 세상에 나왔다. 영어로 번역된 이후 2006년 미국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알렉시예비치의 저서에 대해 평론가들은 ‘목소리 소설’이라고 평가했고 작가 자신도 ‘소설-코러스’라고 이름을 붙였다. 덕분에 그의 책들은 내용의 참혹성과는 별개로 난해하거나 현학적이지 않다는 평이다. 국내에서는 2011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증언록인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새잎)가 나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주목받기도 했다.

알렉시예비치는 2010년대 이후 꾸준히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면서 올해는 영국의 베팅업체로부터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가의 1순위에 꼽히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여성작가인 캐나다 소설가 앨리스 먼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2년 만에 다시 여성작가에게 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스웨덴 한림원이 알렉시예비치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것은 분명한 ‘메시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과 무관한 개인의 고통은 없으며 문학 창작에 더 이상 ‘남녀’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다운율적 작문으로 우리 시대의 아픔과 용기를 담아내는 데에 기념비적인 공로를 세웠다”고 수상이유를 밝혔다.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으로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 여성작가는 14명으로 늘었다.

한편 이번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으로 한국의 노벨문학상에 대한 기대는 다시 미뤄지게 됐다. 필립 로스나 조이스 캐롤 오츠 등의 수상을 기대했던 미국 또한 기대를 접어야 했다. 미국은 1993년 ‘재즈’ 등의 소설을 쓴 토니 모리슨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영어 독자가 가장 많은 미국문학계로서는 자존심 상할 일이기도 하다. 역대 노벨문학상 최다 배출국가는 프랑스로 15명이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공고한 노벨상 홈페이지 화면


다음은 알렉시예비치의 연보다.

▲ 1948년 5월 31일 우크라이나 이바노프란콥스크에서 벨라루스인 아버지·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

▲ 1967년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국립대학교 언론학과 입학. 대학 재학 중 학술신문과 학생신문대회 등에서 수상.

▲ 1983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집필. 출판사에 원고를 넘겼지만 소비에트의 전쟁 영웅을 영웅적인 투사로 다루지 않고 그 이면의 고뇌와 아픔을 다뤘다는 이유로 출간이 2년간 보류됨.

▲ 1985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가 벨라루스 민스크와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동시 출간. 두번째 책 ‘마지막 증인들: 천진하지 않은 100가지 이야기’ 출간.

▲ 1989년 범죄적이고 폭력적인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대한 충격적인 폭로를 담은 책 ‘아연 소년들’ 출간.

▲ 1992년 ‘아연 소녀들’이 영웅적 전쟁을 깎아내렸다는 비판을 받으며 재판을 받게되나 민주 진영 시민들의 구명운동으로 유죄판결을 면함.

▲ 1993년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죽음에 매료되다’ 출간.

▲ 1997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 폐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체르노빌의 기도: 미래의 연대기’ 출간. 문학의 명예와 가치상 수상

▲ 1998년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최고 정치서적상, 유럽 상호이해상, 글라스노스트 재단의 올해 가장 진실한 인물상 수상.

▲ 1999년 국제 헤르더상,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내쇼날 세계의 증인상 수상.

▲ 2001년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평화상 수상.

▲ 2002년 초판 출간 당시 검열에 걸려 싣지 못한 내용을 추가한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개정판 출간.

▲ 2005년 전미 비평가협회상 수상.

▲ 2013년 사회주의 붕괴 후 소비에트 사회를 살아간 사람들의 상실감을 이야기하는 ‘세컨드 핸드타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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