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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하룻밤 새’ 일이다. 안희정 전(前) 충남지사가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보도된 지 하루 만인 6일 지사직을 내려놨다. “일체의 정치 활동도 중단하겠다”고 한 만큼 영욕의 정치인생 30년에도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 경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면서 차기 대권 주자 1순위로 평가받던 그다. 안 전 지사의 성폭행 의혹이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는 물론 향후 여당 내 역학 구도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다 구속, 충남지사로 재기
본인 스스로를 ‘직업 정치인’이라고 칭하던 안 전 지사가 중앙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다. 안 전 지사는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함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이란 평가 속에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며 실세 중에서도 실세로 통했다.
하지만 검찰이 2003년 대대적인 ‘2002년 대선 자금’ 수사에 착수하면서 ‘정치자급법 위반 및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상 알선수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추징금 4억 9000만원 선고를 받아 실형을 살았다. 감형 없이 만기출소한 안 전 지사는 참여정부에서 공직을 맡지는 못했지만, 수시로 청와대를 드나들면서 노 전 대통령의 조언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응원에도 복귀는 쉽지 않았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당시 여권인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역대 최다 득표 차로 꺾자 스스로 “친노(친노무현)라고 표현되어 온 우리는 폐족”이라고 평가할 만큼 벽에 부딪혔다.
하지만 2008년 7월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된 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인 2010년 충남지사로 당선되면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당시 충남은 현 여권이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불모지였고, 안 전 지사는 이후 정치적으로 탄탄대로를 걷는다.
안정적으로 도정을 이끌면서 2014년 지선에서는 앞선 당선보다 득표율을 10% 가까이 끌어올리고 여유 있게 재선에 성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정을 거치면서는 민주당의 대권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비록 ‘문재인 대세론’을 넘지는 못했지만 정권교체 이후에도 안 전 지사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전당대회 출마’ 등 차기 주자로서 정치적 행보 하나하나에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 구심 하나 사라져…지선·전대 등 후폭풍 예상
추미애 대표는 6일에도 “큰 충격을 받으신 국민 여러분께 거듭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재차 몸을 낮췄다. 우원식 원내대표도 “다른 어떤 사안에 대한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도 경우에 맞지 않다”며 지난해 5월 당선된 뒤 처음으로 주례 원내대책회의도 열지 않았다.
안 전 지사의 높은 지지세를 바탕으로 ‘경선이 곧 본선’이라는 말까지 나오며 과열 양상을 보였던 충남지사 선거도 직격탄을 맞았다. 박수현·복기왕 예비후보와 양승조 의원은 모두 예정된 공식일정을 취소하고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특히 박 예비후보는 ‘충남도민께 올리는 글’을 통해 “안희정의 친구이기에 더욱 고통스럽다”며 모든 선거운동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당 내부 권력구도에도 후폭풍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안 전 지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친노 핵심이지만 현재 당내 주류 세력인 친문(친문재인)과는 결을 달리한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대선 경선에서 일부 초선·안 전 지사의 정치적 기반인 충청지역·비문 의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또 문 대통령과 안 전 지사 양 측과 인연이 겹치는 당내 인사들은 “다음번에는 안희정을 전폭적으로 밀어서 지난 경선에서 진 빚을 갚을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구심점 역할을 할 차기 주자 한 명이 사라진 만큼 향후 당권과 대권 경쟁은 더욱더 안갯속이 됐다.
다만 민주당은 일단 지방선거 문제 등 안 전 지사 사태가 몰고 올 향후 정치적 이해관계 논란에는 선을 긋고 있다. 당 관계자는 “안 전 지사가 ‘그럴 줄은 몰랐다’는 게 당내 전반적인 분위기”라며 “지금은 지방선거 등에 미칠 영향 등을 언급할 단계는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