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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 따르면 그의 부친은 어린 시절 주판이랑 산수를 동네에서 가장 잘해서 수학 신동으로 불렸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면서 평생을 막노동하며 가족을 돌봤다고 전했다. 그렇게 사망 직전까지도 공장 일용직으로 일했으며 이혼하고도 A씨와 동생만 바라보고 살았다고 한다.
A씨는 “아빠가 나의 세대에 태어났거나 그 세대에서 풍족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면 분명 아빠도 서울대 입학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며 “우리 집안은 원래 박학한 유전자를 가진 집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다”라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이어 “아빠랑 비슷한 나이의, 적어도 중산층 이상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공장이 아닌 낭만적인 대학교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강단에 올라가신 서울대 교수님들 보면 아빠의 가능성과 학업에 있어서 기구했던 운명 등 여러 생각이 든다”라고 밝혔다.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은 “아버지의 인생은 오로지 자식들을 위한 사랑뿐이었다” “성공한 아버지다. 홀로 자식 키우시며 자식에게 존경받았으면 가치 있게 사신 것” “아버지 생각난다” “자식에게 좋은 아빠로 기억된다면 충분히 멋진 인생 아닐까”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멋진 삶 살길 바란다”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 드려야겠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