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 협상 결렬시킨 ‘보이지 않는 손’

야당, 이병석 중재안에 선진화법 개정 제시… 여당은 거부
권역별 비례대표제 수용 불가… 여당, 과반 의석 붕괴 우려
이원집정부제 개헌 염두에 둔 총선 압승 장애물 제거 포석
  • 등록 2015-11-13 오후 4:54:26

    수정 2015-11-13 오후 4:54:26

[이데일리 선상원 기자] 협상은 상대방이 있다.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구 획정 협상도 마찬가지다. 여야 두 거대정당이 있다. 협상에는 전부와 전무가 없다. 어느 한 일방만 100% 만족하는 협상은 있을 수 없다. 전쟁에서 이겨 힘으로 굴복시키면 가능하기는 하다.

협상을 대화를 전제로 한다. 양쪽에게 돌아갈 몫이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 지난 9월 노동개혁안을 마련한 노사정위 협상도 그랬다. 여야 협상은 더 그렇다. 현 의석 295석 중 새누리당 158석(53.5%), 새정치민주연합 127석(43.0%)으로 두 정당이 분점하고 있다. 여야 합의가 없으면 안건처리가 불가능한 국회 선진화법 아래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여야는 선거구 획정안 법정처리 시한인 13일까지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 협상을 마무리하기 위해 3일 동안 머리를 맞댔다. 당 대표와 원내지도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까지 총 출동했다. 그러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여야, 농어촌 선거구 감소 최소화 공감… 방법론에 이견 = 이번 선거구 획정안 협상은 여느 때와는 달랐다.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획정의 인구비례 기준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인구편차를 3:1에서 2:1로 변경해야 했다.

인구 상하한선을 2:1로 조정하면 농어촌 지역의 선거구 감소가 불가피하다. 농어촌 지역 국회의원들과 주민들이 반발하며 농어촌 지역구를 지키기 위해 공동 대응에 나섰던 이유이다.

여야 지도부는 협상에 앞서 농어촌 선거구 감소 최소화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인구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과 지역간 균형발전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법론이었다. 여당은 사표 방지와 전문가 충원 수단인 비례대표(현행 54석)를 줄여 농어촌 선거구를 살리자고 했고, 야당은 의원정수를 소폭 확대(3석)거나 비례대표를 줄일 수 밖에 없다면 사표 방지와 표의 등가성 제고를 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맞섰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역주의 완화와 투표가치의 평등성 강화를 위해 정개특위에 제안했던 방안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6개 권역을 나눠 의원정수 300명을 권역별 인구비례에 따라 배분한 뒤 각 정당의 득표율에 따라 의석(지역구+비례대표)을 배분하는 제도다.

협상 과정에서, 여야는 비례대표를 7~9석 줄여 지역구를 늘리는 것에는 의견을 모았다. 현행 246석에서 254~255석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야당은 비례대표 수가 줄어 사표 방지 취지가 훼손되는 만큼 이에 대한 보완을 요구했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비례대표가 줄면) 새누리당은 지역구가 늘어남으로써 가장 득을 많이 보게 된다. 새누리당에 호소했다. (표의) 비례성이 훼손되는 만큼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선관위에서 제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수용해달라고 했다. 안됐다”고 말했다.

◇야당, 권역별 비례대표제 50% 적용 이병석 중재안까지 양보 = 야당이 한발 더 양보했다. 선관위 제안 권역별 비례대표제에서 이병석 정개특위 위원장이 제시한 중재안인 균형의석제로 물러섰다. 균형의석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50% 적용한 것으로, 정당득표율에 따른 의석수보다 많은 의석을 가져가는 정당의 의석 일부를 정당득표율에 따른 의석수의 과반조차도 가져가지 못하는 정당에 배분해 표의 등가성을 확보해주는 제도다.

이 위원장이 19대 총선 결과에 균형의석제를 적용해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새누리당과 민주당(현 새정치연합)은 각각 4석이 줄고 자유선진당과 통합진보당은 각각 2석, 6석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전을 보이던 협상은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 막혔다.

이 원내대표는 “그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다고 주장하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을 과거로 돌리는 내용을 포함한 이병석 의원안을 주면 저희들 안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이 말씀했다. 그것도 수용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최고위원회에서 수용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결렬을 선언해버리고 말았다”고 밝혔다.

◇이병석 중재안 수용하면 여야 두 거대정당 의석수 감소 = 이병석 중재안에 국회 선진화법 개정 검토까지 묶어 제시했는데, 왜 최고위원회는 이를 거부했을까. 협상 중간 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최고위원들에게 협상 과정을 보고했다고 한다.

최고위원들은 ‘의원정수 유지(300명)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불가를 전제로 나머지 내용에 대해서만 협상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후문이다.

김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주요당직회의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선거연령 인하는 우리당이 도저히 받을 수 없음을 밝힌다”며 “의원정수 300명선 안에서 농·어촌 지역구가 줄어드는 것을 최소화해서 늘어나는 지역구수 만큼 비례대표를 줄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정개특위 여당 간사인 이학재 의원은 “야당과 그동안 계속 협상을 한 결과 우리가 받을 수 없는 권역별 비례대표를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단 한 석도 비례를 못 줄인다고 한다”며 “역으로 말하면 비례 54석, 지역구 246석을 유지하자는 의견과 전혀 다른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핵심 쟁점이다. 선관위가 정치개혁 차원에서 제안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한사코 거부하는 이유는 뭘까. 이병석 중재안을 도입하면 새누리당 뿐만 아니라 새정치연합도 비례대표 의석수가 줄어든다.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것이다.

거기다 덤으로 법안 처리를 막는다고 그렇게 얘기해 온 국회 선진화법도 개정할 수 있다.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 42.8% 정당 득표율에 154석 획득 =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과반 의석을 획득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지난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은 정당 득표율이 42.8%에 불과했지만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합쳐 154석을 얻었다. 50%를 얻지 못했는데도, 소선거구제라는 선거제도 특성으로 인해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부분 적용하는 이병석 중재안을 채택한다고 해도, 과반 의석을 획득하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시뮬레이션 결과, 새누리당은 중재안 적용시 150석을 얻었다. 과반 의석은 여당 입장에서는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기반인데 이게 허물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선거제도 개혁의 핵심인 표의 비례성 확대를 거부할 명분은 안된다. 정의당 한창민 대변인은 “새누리당은 비례성 확대는 커녕 자당의 지역구 지키려는 욕심만 부렸다. 기득권을 한줌도 내려놓지 않으려 했다. 새누리당의 이런 떼쓰기와 기득권 지키기는 옆에 있는 한 석을 가진 농부의 땅마저 빼앗으려는 만석지기의 파렴치한 탐욕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이번 선거구 획정안 협상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청와대 개입설이 흘러 나오고 있다. 전병헌 새정치연합 의원은 “사실 양당간의 협상을 보면 여당 대표단은 허수아비 대표단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국회법 개정 합의’도 사실상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오픈프라이머리합의’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이것은 청와대가 번번이 국회협상을 걷어찼기 때문이다. 지금 선거구 획정시한을 앞두고 협상이 결렬된 것은 청와대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양당 대표 협상에 또다시 개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친박계, 내년 총선서 180석 압승시 개헌 나설 수도 = 때 마침 친박 핵심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이 12일 KBS라디오 ‘안녕하십니까 홍지명입니다’에 나와 20대 총선 승리를 전제로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에 불을 지폈다. 홍 의원은 “5년 단임제 대통령제도는 이미 죽은 제도가 된 것 아니냐. 이제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는 게 거의 모든 국회의원들의 공감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희 생각에는 이원집정부제, 외치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를 하는 총리, 이렇게 하는 것이 지금 현재 말하는 5년 단임제 대통령제보다는 훨씬 더 정책의 일관성도 있고 또 국민의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할 수 있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런 얘기들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의 개헌 주장은 친박 실세인 최경환 경제부총리, 이인제 최고위원의 개헌 주장에 이어 나온 것이어서,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김 대표 공언대로 180석 이상의 압승을 거둘 경우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해 친박계가 계속 정권을 유지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청와대는 13일 홍 의원의 개헌론 관련 질문에 “드릴 말씀이 없다”며 개헌론을 일축했다.

하지만 친박계가 이런 구상을 갖고 있고 이것이 여야의 선거구 획정안 협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면, 여당 입장에서는 총선 압승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수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친박계가) 진짜 개헌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내년 총선서 180석 정도 얻으면 야당의 개헌론자들을 끌어들여 개헌할 수 있다. 그러면 친박 영구집권이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서는 국회와 정치에 대한 혐오가 필요하고 키워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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