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크고 두꺼운’ 이춘재 “용의선상 배제 이해 불가…피해자에 사죄”(종합)

수원지법, 2일 화성사건 재심공판 이춘재 증인 출석
“올 것이 왔다…범행 당시 어찌 저질렀는지 잘 몰라”
“수사 부실…굳이 안 감췄는데 용의선상에 안 올라”
“가석방 무산 아쉽지만 영원히 묻힐 거라 생각 안 해”
"'살인의 추억' 봤지만 감흥 없어…사실과 다른점 多"
  • 등록 2020-11-02 오후 5:09:14

    수정 2020-11-02 오후 10:01:22

[수원=이데일리 이용성 정병묵 기자]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경기 화성지역 일대에서 발생한 ‘이춘재(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인 이춘재(57)가 사건 발생 30여년 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춘재 고교시절 사진(사진=연합뉴스)
수원지방법원 형사12부(재판장 박정제)는 2일 오후 ‘이춘재 8차 사건 재심’ 9차 공판에 현재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를 증인 신분으로 출석시켜 신문을 진행했다. 재판부는 이춘재가 증인 신분이기 때문에 언론에 그의 얼굴 사진, 영상 촬영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1시 39분쯤 파란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등장한 이춘재는 반 삭발한 상태였다. 남은 머리카락은 희끗했고 이마에 굵은 주름 한 줄이 있었다. 공개된 젊은 시절 사진처럼 눈썹이 반 잘려 있는 모양이었고 눈매는 날카로웠으며 큰 귓불을 갖고 있었다. 흰색 헝겊 마스크를 착용하고 입장했지만 추후 일회용 마스크로 고쳐 썼다.

이춘재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서 유력 용의자의 인상 착의로 언급된 것처럼 손이 여성처럼 고와 보이지는 않았다. 손이 크고 두꺼운 편이었다.

“올 것이 왔다…범행 당시는 어찌 저질렀는지 잘 몰라”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춘재는 이날 재심 청구인 측 신문에 비교적 성실히 답변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부분은 답변을 얼버무렸지만 자신이 저질렀던 사건을 떠올리며 시체 유기 장소를 구체적으로 떠올리기도 했다.

재심 청구인 측 박준영 변호사가 “작년 (교도소) 공장에서 일하던 중 경기도에서 자신을 조사하러 왔다는 얘기를 듣고 무슨 생각이 들었는가”라고 묻자, 그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찰은 이춘재를 화성연쇄살인사건 피의자로 특정, 그해 10월 부산교도소로 경찰과 프로파일러들을 보내 수차례 조사했다. 이춘재는 당시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했다가 잇달아 증거가 제시되자 자백했다. 이춘재는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했는데 부인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진술을 거부하려다 말이 잘못 나와서 부인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진술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프로파일러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가 “범행을 계속 저지르고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으니 범행에 더 대담해진 것인가”라고 캐묻자 이는 “지금도 왜 그런 생활을 했는지 정확하게 답을 낼 수 없다”며 “그냥 (범죄 현장에) 가 보면 그런 상황이 벌어져 있는 것이고, 계획을 하고 준비 있게 (범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장소에서도 살인 강도를 했다”고 언급했다.

“수사 부실…굳이 안 감추고 다녔는데 용의선상 안 올라”

이춘재는 당시 경찰 수사가 부실했었고 그 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지난해 법무부 재소자 DNA 정보를 미제사건과 대조 수사하던 과정에서 이춘재는 화성연쇄살인사건 범인으로 특정됐다. 경찰은 처제 살인 사건으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춘재의 DNA와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가 일치한다고 확인했다.

이춘재는 이날 “저는 제가 안 잡히려고 증거 은폐하고 강력하게 시나리오 작성하고 하지 않아서 DNA 채취 후에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며 “경찰이 언젠가 찾아오겠지 생각했지만 오지 않았고, 안 오니까 ‘안 오나 보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군 제대 직후 1986년 아동 강간 사건으로 경찰 조사를 받았으나 처벌받지 않았고,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선상에서도 당시 빠져나갔다. 이는 “검문 당한적은 있었다. 그 당시 형사들이 거의 뭐 (화성 사건으로) 까이다시피 했기에(비난받았기에)”라며 “검문 과정에서 긴장하게 만든 특별한 상황은 없었다. 민증(주민등록증) 없어서 파출소 한 번 간 적 있었다”고 답했다.

이춘재는 자신이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저도 아직도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제 주변에 난 사건인데, 제가 은폐하거나 숨기고 그러면서 돌아다닌게 아니고 수사가 진행됐다”며 “그러면 한 번쯤 의심을 받는, 그런 용의선상에 오를 수 있단 생각을 했는데 수사관 몇백명이 왔다갔다 했는데 딱 빠져나왔다”라고 강조했다.

“가석방 무산 아쉽지만, 영원히 묻힐 거라 생각 안 해”

이춘재의 고등학교 재학시절 모습.(사진=연합뉴스)
이춘재는 모범수로 가석방을 노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자백 이후 가석방이 물 건너 갈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사건이 영원히 묻힐 것이라는 생각을 안 했다”며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사건 관계된 모든 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다”고 사죄했다. 이어 “제가 반성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유족들이) 하루 빨리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생활을 하셨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이는 ‘살인의 추억’을 교도소에서 봤지만 영화에 대해 별 감흥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춘재는 “영화로서 봤고 별 감흥이 없었다”며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이 있어서 신경 써서 보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목이 졸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윤모(53)씨를 범인으로 검거했다. 이후 윤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형됐다가 20년을 복역한 뒤 지난 2009년 가석방됐다. 이춘재가 자백하자 윤씨는 지난 1월 자신이 연루된 8차 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이춘재는 화성 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청주에서 처제를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1995년 7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현재까지 부산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한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7월 최종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화성과 수원 등지에서 이춘재가 총 14건의 살인사건과 9건의 강간사건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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