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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내놓은 통화정책방향 결정문 중 종합판단을 반영한 마지막 문장이 살짝 바뀌었다.
먼저 기존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의 문구는 이렇다. “향후 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를 판단해 나갈 것이다.”
이 문장이 이번 결정문에선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는 향후 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판단해 나갈 것이다.”
들어간 단어는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뜻도 다르지 않다. 문장의 어순만 달라졌을 뿐이다.
다시 지난해 11월 결정문으로 돌아가 보자. 기존의 문구에는 ‘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면밀히 관철하면서’라는 전제가 먼저 나온다. 이는 성장과 물가를 고려하지만, 이런 변수가 금리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두 개 변수가 결과를 바꿀 수 있다는 연결고리가 약하다. 마치 독립적인 변수라는 뉘앙스다.
그런데 문장의 순서를 바꾸면 느낌이 다르다. 기준금리의 결정 여부를 ‘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보면서’ 판단한다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성장과 물가’라는 변수가 문장의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성장과 물가라는 변수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좀 더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금리 결정은 성장과 물가 변화의 종속변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지난해 10월 금통위원들은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 나갈 것”이란 문장에서 ‘신중히’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이후 11월 금통위는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나타난 미세한 변화는 위원들의 생각 변화를 보여준다.
물론 한은은 추가적인 완화 조치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이 총재는 “지금의 통화정책 기조도 아직도 완화적이다. 더 완화적으로 가고 하는 그런 것을 고려할 단계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금통위원들은 앞으로 대외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성장과 물가의 경로가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싶었다. 이는 통화정책 판단의 근거가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문을 조금 열어놓은 셈이다. 이런 금통위원들의 고민이 결정문의 어순 변화로 나타났다.
한은 고위 관계자는 “성장과 물가 전망을 하향 조정한 점 등을 고려해 의도적으로 문장의 순서를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금통위원들은 바꾼 통화정책방향 결정문 문장 순서에는 앞으로의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는 변화의 씨앗이 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