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정부가 공공부문 뿐 아니라 민간에도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높이고자 기업들을 대상으로 여성 고위관리직 목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공적기금 투자 기준에 여성대표성 항목을 추가하는 등 인센티브를 마련해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겠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자율 협약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정부가 민간 기업에도 여성 고위직 목표제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점을 환영했다. 다만 목표제가 실효성을 갖추려면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강력하고 구체적인 유인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자율 ‘고위관리직 목표제’ 도입…인센티브 발굴
20일 여성가족부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한 ‘2019 업무보고’에 따르면 여가부는 그간 공공부문에서 여성의 대표성을 끌어올리는 정책에 집중했지만 내년부터는 이를 민간에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여가부는 기업을 대상으로 여성 고위직 비율 및 여성 임원 후보군 양성 실태 조사를 실시해 내년 10월 발표하고 기업 내 임원 성별 현황 공개도 확대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경력단절예방서비스를 확대해 재직여성의 경력 설계 지원도 돕기로 했다. 이 국장은 “여성 고위직 목표제 도입이 기업 경영성과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관해 조사할 수 있는 연구 지표를 마련하고 실증 연구를 통해 연구 보고서도 발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문가 “도입은 긍정적…강력 유인책 없인 실효 없을 것”
전문가들은 느슨한 형태이지만 정부가 기업을 대상으로 여성 고위관리직 목표제를 공개적으로 제시했다는 것 자체를 긍정적인 변화로 봤다. 우석훈 경제학 박사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민간에도 법적으로 여성 고위직 할당제를 실시하는 것이 맞다고 보지만 한국의 사회인식 변화 속도를 봤을 때 이를 곧바로 실시하기에 시기상조라고 본다”며 “그런 점에서 자율 협약 형태라도 고위관리직 목표제를 도입하기로 했다는 점 자체가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이 노동시장 내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여성 임원 수는 여전히 저조한 현실이다. 여가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수는 총 454명으로 전체 임원의 3%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406명·2.7%)보다는 소폭 올랐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21.8%)에 한참 못 미치는 실정이다. 심지어 이들 기업 중 328곳은 여성 임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17개 국가의 상장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2004년 8% 수준에서 2016년 26.2%로 3배 이상 증가했다. 노르웨이가 2003년 가장 먼저 법으로 규정해 실시한 ‘여성 고위직 할당제’가 아이슬란드,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들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캘리포니아 주가 처음으로 기업 여성 이사 할당제를 도입했다. 내년 말까지 적어도 여성 임원 한 명을 둬야 하며 이를 어길 시 최대 30만 달러(약 3억 4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한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이 여성 고위관리직 목표율을 달성할 수 있게끔 적극적으로 자문 역할도 강화해 나가야 목표제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업 대표들을 대상으로 인식전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내부 고위직 승진 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여성 인사를 고위직으로 영입하는 등 목표율을 달성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제시해주는 조언자 역할도 병행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