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결혼? "가장 '우아하고 위험한' 전략"

인문학으로 되살린 금융 본질·속성
리스크관리·분산투자·옵션 등 핵심
'오만과 편견' 등 문학·역사서 찾아
'사악하다' 편견 부당…인간미 심어
………
금융의 모험
미히르 데사이|364쪽|부키
  • 등록 2018-08-29 오전 12:12:00

    수정 2018-08-29 오전 12:12:00

영국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1813)을 원작으로 한 동명영화 중 몇 장면. 19세기 영국의 결혼관을 풍자한 소설 속에서 ‘금융의 모험’ 저자 미히르 데사이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현대금융의 ‘리스크 관리 전략’을 읽어낸다(사진=이데일리DB).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남자 열 명이 나를 사랑할 수도 있어요.” 이 맹랑한 발언은 영국작가 앤서니 트롤럽(1815∼1882)이 쓴 장편소설 ‘피니어스 핀’(1867)에 나왔다. 어느 집안의 귀한 상속녀인 바이올렛 에핑검이, 자신에게 바짝 애가 탄 칠턴 경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 듣자 대뜸 이렇게 받아친 거다. 그러곤 대못까지 눌러 박는다. “그렇다고 열 사람 모두와 결혼할 수는 없지요.” 사랑이 결혼할 이유가 못 되는 배경을 설명한 거다.

다소 뜬금없다고 하겠지만 에핑검의 ‘결혼철학’을 조금만 더 보자. 에핑검은 ‘결혼을 위해 딱 맞는 한 사람’을 기다린다는 자체가 ‘무리수’라고 판단한다. 만약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저 고를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를 뽑아낼 뿐이란 거다. 그래서 남편을 고르는 일이 집 고르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누구나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집을 찾진 않아. 그저 원하는 그때 선택하지”란 논리를 편다. 그러니 에핑검이 볼 때 ‘단 한 사람’과의 사랑을 찾으려는 결혼은 ‘너무 위험한 전략’인 것이다. 그렇다고 호호 할머니가 될 때까지 혼자 살 순 없는 노릇. 에핑검이 품은 대안은 이거다. 최종적으로 선택할 준비가 됐을 때 가려낼 수 있는 후보를 여럿 확보해두는 것. 결국 그녀는 여러 명의 청혼자를 잘 모으고 관리하다가 ‘그때’가 되자 칠턴 경을 선택한다.

스토리는 이 정도만 보자. 여기서의 핵심은 따로 있으니. 바로 ‘금융’이다. 다시 말해 소설 속 결혼철학이 현실의 금융철학과 대단히 유사하다는 얘기다. 금융이나 결혼이나 ‘리스크가 큰 전략’이란 것, 그만큼 리스크는 신중히 관리해야 한다는 것, 리스크를 줄이려면 분산투자가 답이란 것, 여러 옵션의 포트폴리오를 마련한 뒤 적절한 시점이 오면 어느 하나에 투자하는 게 성공확률이 높다는 것. 어떤가. 그럴듯한가. 리스크, 리스크 관리, 분산투자, 옵션 등의 복잡한 금융용어가 고스란히 에핑검의 결혼전략에 녹아있지 않나.

결혼과 금융의 상관관계. 이 ‘생활밀착형’ 금융철학은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저자에게서 나왔다. 동기는 이렇다. 금융에 인간성을 불어넣어보자는 거다. “금융과 시장이 인간성에 배치된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이 둘의 통일을 시도해보자”다.

△19세기 소설에 ‘금융전략’ 있더라

사실 흔들리는 갈대처럼 늘 대답이 왔다 갔다 하는 질문이 있지 않나. 선인가 악인가. 돈과 관련한 모든 일들이 두 면을 다 가졌지만 유독 금융은 그렇지 않았다. 가치를 창출하는 도구는 ‘개뿔!’ 되레 가치를 빼앗는 데만 쓰이는 것쯤으로 여겨뒀더랬다. 그러니 인간미라곤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 없는 것이었고. 저자가 문제제기를 꺼낸 지점이 바로 여기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계를 항해하는 데 절실한 연장을 제공하는 게 금융인데, 야비·사악함으로만 몰아가는 건 부당하다는 생각에서다. 금융을 향한 부정적 시선을 벗기고 인간성을 불어넣어보자 했다. 무지·통념까지 깨버리는 작업을 해보자 했다. 그 병기가 ‘인문학’이다. 문학과 역사·심리, 과학과 종교는 물론 영화·만화·TV드라마·미술 등 문화 전반에까지 걸쳐 있다. 에핑검의 주관이 겹겹이 들어찬 ‘피니어스 핀’이 괜히 등장한 게 아니란 소리다. 몇 가지만 보자.

미국 실용주의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1839∼1914)의 사상은 ‘금융의 본질’을 알려주는 병기로 내세웠다. 퍼스가 본 세상은 한마디로 ‘보험’이었다. “우리는 모두 보험회사다”라고 설파하기도 했다니. 수학자로 기호학자로 폭과 깊이가 탁월한 사상가가 세속적인 주제인 ‘보험’을 언급한 게 괜찮은 건가. 저자의 대답은 간단하고 확고하다. “보험은 세속적인 게 아니라서”란다. 우리 삶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긴요한 금융의 틀이니까. 어째서? 우연과 무작위성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동안 늘 치근대는 리스크를 관리하는 결정적 수단, 그게 보험이니까.

특히 ‘리스크 관리’는 저자가 공을 들인 부분. 이는 ‘피니어스 핀’과 다른 듯 닮은, 제인 오스틴(1775∼1817)의 소설 ‘오만과 편견’(1813)에 펼쳐놨다. 19세기 영국문학의 주요한 소재가 된 ‘경제력 있는 신랑감’ 이야기 말이다. 결혼시장에 나온 젊은 여성이, 청혼자에 따라 제각각인 위험성을 어찌 판단해낼 건가 하는. 신랑감의 득실을 따지고 절충해나가는 과정은 ‘오만과 편견’에서도 중심축이었다. 저자가 볼 때 이 내용은 21세기 투자방식과 다를 게 없다. 가령 1년 만에 큰 돈을 벌었다는 스타트업에 무작정 투자해도 괜찮을지, 당장 채용하겠다는 회사에 나갈 건지 아니면 좀더 찾아볼 건지 등등. 리스크와 수익을 재는 이들 행위 역시 금융의 핵심 아닌가.

△인문학으로 다룰 수 있는 착한 금융?

오지랖인가. 인문학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금융에 붙인 ‘증명할 수 없는’ 비유들이 가득하니. 분명한 건 책에 심은 저자의 논지만큼은 투명하다는 거다. 금융이란 게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하나, 금융이 소문으로만 듣던 것처럼 나쁜 비즈니스만은 아니란 게 다른 하나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모인다. 금융을 무조건 사악한 것으로만 몰아세워선, 또 바로잡는다고 규제나 분노만 들이대선 해결될 게 없다는 것. 차라리 인문학의 잣대로 금융의 관념·이상을 포착할 때 공감력이 커지고 저항력도 강해질 거란 주장이다.

그런데 말이다. 과연 금융이 저자의 뜻대로 그리 나긋나긋하게 따라줄 건가. 돈이 탐욕을 벗는 건 신의 영역이고, 99%를 뒤흔드는 1%가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래, 한계는 있다. 그럼에도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잠시 접을 수 있다면, 그래서 저자 본연의 취지만 들여다보는 게 가능하다면 책은 그 나름의 금융철학서로 의미가 적잖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금융·세법전문가가 유려한 필치로 흘린 문학과 문화, 역사와 철학을 기웃거릴 수 있는 또 다른 재미가 있으니까.

원제 ‘금융의 지혜’(The Wisdom of Finance)가 ‘금융의 모험’으로 탈바꿈했다. 언뜻 헷갈리는 복선이지만 이해 못할 것도 없겠다 싶다. 다분히 한국적인 ‘리스크 관리’라고 할까. 마케팅이든 투자든 말이다. 아직은 지혜로만은 약할 테니까. 차라리 모험이라도 해야 먹힐 테니까. 결혼이야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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