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올해는 국내 산업계에 특별히 각인될 정도로 중차대한 변곡점과 이슈들이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특히 올해는 사회적 이슈가 된 경제민주화 법안들로 인해 재계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잇단 재벌 총수들의 구속은 대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국내 대표적 수출 간판스타였던 철강, 조선, 석유화학 업종은 세계 경기불황으로 인한 수요감소와 공급 과잉, 중국업체 도약, 원화 강세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힘겨운 한 해를 보내야만 했다. 글로벌 비즈니스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격인 휴대폰 산업에선 절대강자인 노키아가 몰락하고, 삼성전자가 확고한 1강 체제를 구축하는 등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해이기도 했다.
◇재계를 긴장시킨 경제민주화 법안들
재계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법안들이 무더기로 국회를 통과하거나 계류 중이어서 기업마다 우려의 한목소리를 높인 한 해였다.
부당 단가인하 등 불공정거래 관행을 바로 잡기 위한 하도급법,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내부거래를 금지한 공정거래법, 갑을 관계로 대표되는 프랜차이즈 횡포를 뿌리 뽑기 위한 가맹사업법, 신규순환출자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등 이른바 ‘경제민주화’ 법안들이다.
이에 대한 견제심리에서 재계는 경제민주화 법안 대신 외국인투자촉진법 개정안 등 경제활성화 법안을 조속히 입법처리해 달라는 ‘맞불’ 을 놓았다.지난달 15일 대한상의, 전경련 등 경제5단체장이 사상 처음으로 국회를 찾아가 여야 대표들을 만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재계와 정치권의 만남은 경제민주화 법안을 둘러싼 재계의 다급한 속사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자리였다.
재계는 경제민주화 법안에 대해서는 기존 잘못된 비즈니스 관행을 바로 잡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한꺼번에 이들 법안이 시행되면 기업활동이 위축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결과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이들 경제민주화 법안은 재계의 입장이 상당 부분 반영돼 원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완화됐다는 평가다. 반면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은 경제민주화 법안마다 당초 취지에서 후퇴했다며 불만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지난 18일에는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재계에는 또 다른 ‘초대형’ 근심거리가 생겨났다. 특히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기본적인 임금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노사간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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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일부 재계 총수들에겐 어느 해보다 불운했던 한 해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구속된 재벌 총수 일가만 모두 8명에 이른다. 대기업 총수들이 대거 재판정에 서야 했던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재판 당시나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도 이 같은 재계 오너들의 구속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재계 총수들의 무더기 구속사태는 한국경제 기여도를 감안해 재계 오너들의 법정구속만은 가급적 자제하던 기존 법조계의 기류가 크게 바뀐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올해 구속된 재계 오너로는 SK그룹의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태광그룹의 이선애 전 상무와 아들인 이호진 전 회장, 구자원 LIG그룹 회장과 구본상 LIG넥스원 부회장 등이 있다.
이 가운데 SK그룹은 형제, 태광그룹은 모자, LIG그룹은 부자가 각각 동시에 법정 구속되는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과거 어지간한 중범죄가 아니면 재계 총수는 대부분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던 것에 비하면 이례적이다. 올해 법원은 신상필벌을 중시하며 법정구속에는 재계 총수라고 예외적일 수 없다는 것을 판결로 뚜렷하게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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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하던 노키아가 몰락하며 마이크로소프트에 넘어가는 이변이 일어난 한해였다. 노키아는 불과 몇 년전만 하더라도 경쟁자들이 넘볼 수 없는철옹성같은 존재였다.휴대폰 업계의 거인이었다.
노키아는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일반 휴대폰이라는 기존 사업영역에만 집착하다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가 노키아의 구원투수로 나서면서 화려한 재기에 성공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기존 핵심사업인 개인용 컴퓨터(PC)기반 운영체제가 모바일 운영체제(OS)에 급속히 잠식당하자, 노키아를 통해 모바일 OS는 물론 스마트폰 분야까지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올해는 삼성전자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절대 지존의 자리를 확고히 한 해로 기록된다. 창업자이면서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뜬 이후 애플은 지난해부터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잡스의 바통을 이어받은 티모시 쿡 애플 최고경영자로서는 애플의 혁신성 부족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절감한 한 해였다.
혁신 동력을 잃고 비틀대는 애플을 상대로 삼성전자는 후발주자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계 스마트폰시장을 30% 이상 차지하며 ‘카피켓(모방자)’이라는 오명을 상당 부분 씻어냈다.
화웨이, HTC, 레노버 등 중국업체들의 선전이 두드러진 한 해이기도 했다. 특히 화웨이는 올해 3분기까지 스마트폰 3000만대 이상을 판매하며 세계 3위업체로 올라서는 기염을 토했다. 또 다른 중국업체인 레노버도 LG전자를 따돌리며 세계 4위 업체로 도약, 중국업체들의 시대가 본격 도래하고 있음을 예고했다.
앞으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업체들과 이들 중국업체 간 양자 대결구도가 본격적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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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막대한 양적금융 완화 정책의 여파로 엔저 현상이 심화하면서 일본업체들과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하는 국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업계는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엔저 공세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자동차 업계가 떠안았다.
올 한해 지속된 엔저현상은 사상 최고실적을 경신하며 무한 질주하던 현대·기아차에 급제동을 걸었다. 실제로 올해 3분기 누계 영업이익이 현대차는 지난해보다 4.9%, 기아차는 19.0%나 각각 줄어들었다. 반면 현대차의 대표적 경쟁상대인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상반기(2013년 4~9월) 영업이익이 지난해 동기대비 무려 81%(1조2554억엔)나 늘었다. 엔저가 도요타의 비상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게 자동차 업계의 분석이다.
항공업계 또한 올해 엔저로 인해 입은 피해가 만만찮다. 악화된 한일관계와 함께 엔저 영향으로 일본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어졌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업체들의 일본 노선실적은 올 들어 지난해 대비 20%~50% 가까이 줄었다.
문제는 엔저가 올해 만기가 종료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내년에도 엔저 현상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19일 대한상의 주최 조찬간담회에서 “내년 한국경제 수출에 가장 큰 변수는 엔저”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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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수출 강세 업종이던 철강, 조선, 석유화학 업종은 올해 세계경기 불황의 여파와 중국업체들의 도약 및 중국 경기둔화, 원고 현상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철강업체들은 세계 경기불황으로 인한 수요 감소와 공급 과잉이 지속되면서 이제는 저성장 시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실제로 국내 철강수요는 지난해 4.1% 감소한 데 이어 올해도 5.4% 줄어들었다. 국내 수요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로 인해 국내 1위 철강업체인 포스코의 경우 올해 3분기 누계 매출액이 45조3352억 원으로 전년보다 7.0%나 감소했다. 수익은 더욱 악화됐다. 영업이익은 2조2523억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6.2% 줄어들었다. 업계 2위 현대제철도 사정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현대제철의 올해 3분기 누계 매출액은 9조6787억 원으로 전년보다 15.1%나 감소했다. 영업이익도 전년보다 30.5% 축소된 4977억 원에 그쳤다. 철강업계는 당분간 이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조선 산업은 저가수주가 확산되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최근들어 신규 수주는 다소 늘고 있지만 건조량이 지속 감소하면서 업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있다. 석유화학업종은 올해 중국업체들의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동북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급과잉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중국 등 신흥시장 중심으로 수요가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지만 수익성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이달 초 ‘2014 아시아 태평양 신용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내년에도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경기 둔화와 엔화 약세, 대내적으로는 소비감소와 건설경기 침체등이 이들 업종의 업황 회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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