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엎친데 덮친 격이다. 금융시장 불안과 고유가 사태로 가뜩이나 경제심리가 불안해진 상황에서 포드의 대우차 인수포기라는 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시장 전체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사방 곳곳을 둘러봐도 악재만 보일 뿐 경제심리를 회복시킬 만한 긍정적인 요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악재 넘어 악재"라는 탄식이 절로 흘러 나온다. 일부에서는 "IMF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니 "총체적 난국"이니 하며 또다시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연이은 악재로 우리 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이제 더이상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구태의연하고 무기력한 정부의 대응자세다. 때만 되면 흘러나오는 일상적인 위기론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응은 미흡하기 그지없다. 난국돌파의 해결사 노릇은 고사하고 도대체 위기관리 능력이나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고유가 대책과 16일 열린 경제장관간담회는 현 상황을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이 얼마나 안이한 수준인가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지난주 중동산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30달러선을 훌쩍 넘어선데 이어 이라크와 쿠웨이트간의 정치-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고유가에 대비한 정책대안 마련이 화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그동안 "국제유가는 곧 안정될 것"이라며 여유를 부리던 정부도 급기야 총리주재 회의를 여는 등 뒤늦은 대책마련에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정작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국민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목욕탕 주1회 휴무, 네온사인 억제, 전기요금 차등 인상 등 그나마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런 대책이라면 나도 만들겠다"는 자조가 국민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지난 16일 포드의 대우차 인수포기 발표 직후 열린 경제장관간담회도 정부의 대처능력에 문제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시장붕괴 우려가 고조되는 가운데 소집된 이날 회의에서는 금융안정책과 대우차 후속처리 방안등이 논의됐지만 만족할만한 대안 마련에는 실패, 오히려 시장에 실망감만 가중시켰다. 특히 10조원 채권펀드 추가조성, 중소기업 보증확대 등 이미 발표된 대책을 재탕, 삼탕 우려내며 "잘 해보겠으니 이제 진정하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 정부가 현 상황을 오판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정부의 대처능력 부족에는 정치권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경제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데도 정치권은 공적자금 추가조성 등 경제현안 처리는 외면한 채 여전히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한시가 급한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 일정이 지연되면서 경제정책 전반이 탄력을 받지 못한 채 질질 늘어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처럼 핵심을 짚지 못한 채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는 현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시각은 차갑기 그지없다. 900억 달러를 넘어선 외환보유고와 두자릿수 성장률 등 표면상의 지표를 내세우며 "펀더멘털은 괜찮다"는 식의 정부태도는 마치 97년 외환위기 직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
유장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장은 "지금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경제정책 운영에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며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의 신뢰를 잃기에 충분하다"고 꼬집었다. 서로 머리를 싸매고 해결책을 강구해도 될까 말까한 시기에 오히려 국민들에게 "호들갑 떨지 말라"는 식의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유 원장은 "정부는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시나리오별로 구체적인 정책대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며 "악화된 신뢰도 회복을 위한 근본적인 자세전환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지난 3년동안 온 국민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되살려 놓은 우리 경제가 정부 및 정치권의 안이한 상황인식과 미숙한 대처로 인해 순식간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으며, 더 이상 미적거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다급하다는 지적이다.
"위기관리 능력은 갖추고 있는가?"라는 수치스런 질문에 대해 이제 정부 스스로 답을 보여주어야만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