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韓 인재들은 왜 우물안 개구리가 되었나

  • 등록 2023-07-04 오전 12:01:00

    수정 2023-07-04 오전 2:46:53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에 3년간 지내며 여러 한국 유학생들을 만났다. 큰 꿈을 품고 명문대 간판을 단 이들은 화려해 보였다. 그러나 대다수는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이 있었다. 유학비가 많이 든다거나, 성적이 저조하다거나, 인종 차별을 받는다거나 하는 식의 푸념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더 지낼 수 있을지 여부, 즉 비자 문제였다.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미국에서 일하고 싶어도 취업비자를 받지 못하면 할 수 없다. 한 아이비리그 대학에 다니는 유학생 A씨는 “시민권자 이성과 결혼해 체류 자격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한다”며 농담 반 진담 반 얘기할 정도다.

구자열 무역협회 회장(왼쪽)이 지난 4월 2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영 김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과 면담하고 있다.(사진=무역협회 제공)


미국에서 취업하려면 H-1B(전문직 단기 취업비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H-1B를 연 6만5000개만 발급한다. 그나마 이 중 정보통신(IT)에 능한 인도가 60~70%를 통상 가져간다. 중국이 15~20%다. 그 나머지를 필리핀, 한국 등이 갖는 구조다. 한국의 경우 많아야 3%다. 미국 교육부 집계를 보면, 지난해 한국 유학생은 4만755명이다. 수만명은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한국 기업에도 문제다. 지금은 르네상스로 느껴질 정도로 한국 기업들의 미국 진출이 활발하다. 한 대기업에서 북미 총괄을 맡고있는 B 부사장은 “(근무지인 뉴욕에서) 한 달에 두세번은 텍사스에 간다”며 “요즘 미국은 거대한 공사판 같다”고 했다. 그 중심에 있는 배터리, 반도체, 전기차는 한국 없이 돌아가지 못한다. 그럼에도 비자 문제에 막혀 한국 인재들을 제대로 채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의 하드웨어는 비대한데 소프트웨어는 텅 빈 꼴이다.

그래서 중요한 게 자유무역협정(FTA) 전문직 취업비자다.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온 학사 이상 학위자에게 제한 없이 전문직 비자를 준다. 호주(E-3·1만500개), 싱가포르(H-1B1·5400개), 칠레(H-1B1·1400개) 역시 제공한다. 이 나라 출신 학생들은 H-1B 외에 FTA 취업비자까지 신청하는 특혜를 누리는 것이다.

구자열 무역협회장은 지난 4월 방미 중 영 김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과 만나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전문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비자 문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선의 김 의원은 한국 국적자에 연 1만5000개 전문직 취업비자(E-4)를 발급하도록 하는 ‘한국과 파트너 법안’을 발의한 인사다. 다만 이 법안은 2013년 이후 무관심 속에 줄곧 의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미국 정가의 한 고위인사는 “한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을 지렛대 삼는 게 중요하다”며 “E-4의 필요성을 계속 알려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폐쇄성이 짙은 나라다. 그럼에도 세계 10대 강국으로 도약한 현대사를 들여다보면, 결국 해답은 ‘글로벌’이었다. 한국 인재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것 이상의 민간 외교가 어디 있겠나. 이것은 인재 유출이 아니라 영토 확대다. ‘의대 아니면 의미 없다’는 젊은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이 기회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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