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원로가 본 고 정명예회장-신격호 롯데그룹회장

  • 등록 2001-03-22 오전 12:39:10

    수정 2001-03-22 오전 12:39:10

[edaily] 21일 별세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전 명예회장은 한국 현대사를 이끈 재계의 거목으로 평가되고 있다. 재계원로들이 평소 가졌던 그에 대한 평가를 들어본다. ◇신격호 롯데그룹회장= <아산, 결단력과 추진력의 화신> 지금부터 약 십여 년 전, 골프 약속이 있던 날인데 공교롭게도 눈이 내렸다. 발목이 빠질 정도였으니 오늘 운동은 글렀구나 하는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는데, 정 회장이 골프장으로 떠났다는 전갈이 왔다. 날씨도 몹시 추웠다. 나는 내의에 방한복으로 중무장을 했다. 그러나 그때 70을 갓 넘긴 정 회장은 평소의 수수한 차림에 원기 넘치는 환한 표정이었다. 골프장은 흰 눈이 쌓여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그런데 하얀 공이 어디로 날아가서 어디에 떨어질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 이런 날 운동이 되겠습니까?”하니 “신 회장, 걱정마시오. 내가 빨간 공을 가져왔소.”하는 것이었다. 나는 골프를 시작한 지 40년이 넘었지만 눈 속에서 운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로 일본에서 사업을 했기 때문인데 눈은 고사하고 비가 좀 내려도 운동약속은 취소되든가 연기되는 것이 보통이다. 정 회장은 달랐다. 눈이 와도 골프를 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날 눈 속의 골프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과 정 회장의 박력 넘치는 플레이가 선명하게 기억되는 유쾌한 하루였다. 70노인의 걷는 모습이 20대 청년같았다. 정 회장의 이런 모습은 우리 롯데월드를 지을 때도 그대로 나타났다. 그때 설계를 하느라고 시간을 많이 소비해서 막상 공사기간이 촉박한 터였다. 공사의 절반은 철구조물이었고, 그때까지 한국에서는 그런 대규모의 공사를 한 경험이 없었다. 일본 기술자들도 주저할 정도였다. 그런데 현대가 그것을 해냈다. 특히, ‘롯데월드 어드벤쳐’는 폭 70여미터짜리 호형(弧形) 철구조물을 크레인으로 달아 올려 약 80미터 높이의 천장에 정확하게 장착해야하는 고도의 정확성을 요구하는 난공사중의 난공사였다. 더구나 이런 구조물이 수십 개나 되는데도 이를 거뜬히 해내 약속된 기간 내에 공사를 끝내 주었다. 나는 그때 무서운 추진력과 돌파력을 보았다. 롯데월드를 설계한 세계 최고 수준의 설계회사 사람들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일본의 사업가들은 대개 신중하다. 공장을 하나 짓더라도 재고 또 재서 아주 사려 깊다. 확실한 것이 보일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대가 울산에 자동차공장을 지을 때, 그 당시 한국 실정으로 봐서 잘 될는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정 회장은 마침내 울산 벌 넓은 터에 ‘현대시티’를 일구어 낸 것이다. 자동차에다 조선소에다 그에 따른 수많은 부속공장들을 불과 몇 년 사이에 만들어 냈으니 이른 세계 어느 곳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정 회장의 과감한 결단력과 강력한 추진력의 소산일 터이니 그저 경탄할 따름이다. 가끔 서울이나 동경에서 식사를 했는데 정 회장의 식사는 속도도 빠르고 양도 많았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즐겁게 드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덕담이 튀어 나왔다. “아, 그렇게 잘 드시니 백 살도 넘게 사시겠구려!”하니, 정 회장은 대뜸 “아니 백살이 뭐요, 이백 살은 살아야지.”하며 파안대소를 했다. 정 회장 정도의 일을 성취한 사람이라면 나들이 할 때 좀 화려하더라도 이상한 말할 사람 아무도 없겠건마는 그의 행차는 언제나 단촐했다. 나는 소공동 우리 롯데호텔 로비에서 수행원도 없이 혼자서 바쁘게 걸어다니는 정 회장을 여러 번 목격했다. 걸음걸이도 눈 내린 골프장에서처럼 여전히 젊고 활기찼다. 그런데 최근에는 내가 서울에 자주 나오지 못해서 정 회장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언제나 소탈하고 서민적인 정 회장의 풍모가 그립다. *자료= 현대그룹 사이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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