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들의 반란 "우리도 최고가 될 수 있어요"

일반고에서 소외된 고교 3년생 모인 서울산업정보학교
`선취업 후진학` 보장에 희망과 무궁무진한 가능성 키워
  • 등록 2011-11-17 오전 6:00:00

    수정 2011-11-17 오전 11:07:59

[이데일리 이지현 기자] 매일 아침·저녁 등하교길이면 서울대 다니는 수재 오빠, 누나와 같은 버스를 타고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역으로 향하는 한무리의 ‘꼴찌’ 고교생들이 있다. 하지만 ‘꼴찌’ 고교생들은 서울대생들을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다. 다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꼴찌’들의 반란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서울 관악구 대학동 서울산업정보학교에서 만난 재학생들은 하나같이 다른 교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송파구 방이동 창덕고 교복을, 다른 이는 서초구 반포동 세화고 교복을 입었다. 전교생 513명의 산업정보학교는 교복 종류만 줄잡아 250가지가 넘는다.

▲ 이날 서울산업정보학교 홍병화 군은 자신이 직접 만든 1//500 축소 주택을 보여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삼성테스코 취업이 확정된 홍병화(19)군은 “이곳에 와서 공부도 하고 일도 갖게 됐다”며 “취업이 된 후에도 산학연계로 대학에 갈 수 있어 대입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직업전문 교육을 실시한다는 취지로 1970년 설립된 서울산업정보학교는 지난해까지 3만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고교 1·2학년을 마친 3학년이 1년동안 위탁과정으로 배정돼 각종 직업 교육을 받는다.

이른바 뒤에서 석차 1·2·3등을 다투던 열등생과 무단 결석을 밥먹듯이 일삼았던 문제 고교생들이 모인 곳이다. 하지만 졸업때가 되면 각 분야의 일급 자격증으로 무장한 최고로 변신하고 있다. 김갑제 교사는 “교칙이 필요없고 다만 욕설과 흡연만 금지”라며 “몽둥이 하나 없지만, 교칙은 훌륭하게 지켜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산업정보학교는 자동차, 그린에너지·통신, 스마트IT, 항공전자, 영화방송 등 13개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내년부터 간호조무사를 양성하는 보건간호 분야도 신설된다. 1·2학년 때 인문계고에서 기초 소양을 닦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 이곳에서 전공 수업만 주 29시간 받는다. 재학생들은 휴일에도 자발적으로 학교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공부 시간은 주 40시간을 훌쩍 넘어선다.

선우현(19)양은 “딱히 정해진 미래도 없고 뭘해야 할지 몰랐다”며 “하지만 여기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를 알게 됐다.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 행복하다”고 말했다.

▲ 사진은 임성빈 교감이 바리스타코스를 소개하는 모습이다.
공부는 책상에 앉아 책을 펴는 것이 아닌 팔을 걷어부치는 순간 시작한다. 항공정비사를 양성하는 항공전자 과정생은 항공전자정비기능사와 항공기체정비기능사 등 5개 전문 자격증 준비를 볼트와 너트 조이기를 반복한다.

조리과정생은 한식·양식 조리기능사 자격을 따기 위해 썰고 볶기를 거듭한다. 특히 취업률 100%를 자랑하는 공기조화설비과정생은 한달 앞으로 다가온 공조냉동기계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실습에 매진한다.

서울산업정보학교 재학생들은 절반 이상이 졸업 전에 이미 취업을 확정한다. 조리과정의 경우 학교와 양해각서(MOU)를 맺은 아웃백스테이크코리아와 CJ푸드빌, 미스터피자 등에 바로 취업한다. 보통 2~3개의 자격증을 취득해 졸업하기 때문에 자격 취득률만 90%가 넘는다. 때문에 취업률은 특성화고 보다 높은 54%를 기록하고 있다.

학교는 취업 전선에 뛰어든 학생에게 취업 피드백 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전혜경 교사는 “혹시 맞지 않는 일자리였다면 다른 일자리를 찾도록 하고 있다”며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졸업 후 관리도 철저히 하는 편”이라고 강조했다.

선생님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산학 연계도 추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산업정보학교 출신이 삼성테스코에 취업하면 동양미래대에 진학이 가능하다. 회사에서 진학을 위해 배려해주고, 대학에선 낮에 일하는 학생을 배려해 주3일 야간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한마디로 '선취업 후진학'이 가능한 셈이다. 특히 올해 들어 연세대, 고려대, 홍익대 등으로 학사편입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돼 학생들에게 취업 뿐만 아니라 공부의 꿈까지 키워주고 있다.

소중한 꿈과 소망을 이루기 위해 서울산업정보학교를 찾는 고교생이 넘치고 있지만 지원은 열악한 형편이다. 학생 수 대비 교사 부족으로 교사 1명당 학생수는 30명. 특성화고(교사 1명당 15명) 수준의 2배에 이른다. 실습이 80%에 이르는 교과목 특성상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임성빈 교감은 “서울시교육청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학생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형편”이라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용기 있는 아이들을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 사진은 서울산업정보학교 이희권 교장과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엄지손을 치켜든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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