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 3·1운동③]서대문형무소에 꽃이 피었다, 100년 만에

  • 등록 2019-04-02 오전 12:10:00

    수정 2019-04-02 오전 12:10:00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앞에 있는 매화나무에 봄을 알리는 꽃망울이 트였다.(사진=이정현 기자)
1930년대 서대문형무소 전경.
[이데일리 이정현 기자] 2019년은 3·1운동, 임정 100년을 맞는 해다. 서울에서 찾은 3·1운동, 임정 100년의 흔적을 찾아 모두 1월부터 6회에 걸쳐 매달 연재한다. 최초 독립선언문 낭독과 3·1운동의 출발점이 된 탑골공원(사적 354호)부터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선생 집무실인 경교장(사적 465호), 일제강점기 민족교육의 장르이자 지도자를 배출한 서울중앙고등학교(사적 281호) 등 ‘우리 곁 3·1운동’을 찾아간다.<편집자 주>



봄이다. 겨우내 잔뜩 웅크렸던 초목이 어깨를 편다. 앙상한 가지의 나무 끝에 어느새 꽃망울이 지었다. 따뜻한 바람은 꽁꽁 얼었던 서대문 형무소(사적 제324호)에도 불었다. 100년 전 3·1운동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일제경찰에 의해 수감됐던 곳. 이곳에도 꽃이 피었다.

일제가 한민족을 감금하고 탄압하려 세운 서대문형무소를 걷는다. 3미터가 훌쩍 넘어 뵈는 담장을 따라 둘레를 한 바퀴 도는데 한참 걸렸다. 규모가 가장 컸을 때는 지금 남아 있는 부지의 3배가 넘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였는지 감이 오지 않는다. 내부로 들어서면 잔인무도했던 일제의 모습이 그대로 남았다. 비인간적인 대우와 고문을 겪었던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숨이 그대로 슬었다.

독립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르며 비운의 역사의 상징하는 이곳은 이제 인근 주민의 휴식장소다. 매서운 눈초리로 형무소 안을 감시하던 망루는 이제 산책하는 시민을 내려다본다. 근처의 안산과 인왕산을 오르려는 등산인도 눈에 띈다.

△한민족 탄압의 증거… 이제 자주독립의 상징

서대문형무소는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한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1907년 인왕산 기슭에 일본인이 설계하여 건립한 근대적인 감옥이다.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활용하다 허물 예정이었던 걸 문화재청이 국가사적으로 지정했고 서대문구와 함께 역사 공원으로 만들었다. 한민족 탄압의 증거로서 보존해 후대에 알려야 한다는 게 이유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은 본 전시관을 비롯해 중앙사, 9~12옥사와 한센병사, 사형장, 격벽장, 유관순 열사가 갇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여옥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감옥은 소수의 인원으로 다수를 통제하기 위해 고안한 파놉티콘 차용한 부채꼴 모양이다. 1980년대까지 구치소로 활용한 시설이라 일부 개조했던 흔적이 있으나 일제강점기 모습이 대부분 남아 있다. 외벽은 앞과 뒤 일부만 남아 있으며 여섯 개에 달했던 10m 높이의 망루는 두 개만 남았다.

한때 독립운동가를 감금하고 탄압하던 서대문형무소는 이제 대한민국 자주독립의 상징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관람객도 부쩍 늘었다. 바로 옆 서대문구의회가 있던 자리에는 2021년 8월을 목표로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관이 들어설 예정이다.

문화재청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특별전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로 목숨을 던진 애국선열의 흔적을 살피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KBS와 손잡고 이를 기념하는 ‘열린음악회’를 2일 여는 등 분주하다. 이 자리에는 독립유공자 및 후손과 독립운동 단체 대표 등 관계자를 초청하며 시민도 함께 한다.

△통곡의 미루나무, 여전히 우뚝

서대문형무소는 처음에는 500여 명을 수용하는 곳이었자. 3·1운동을 계기로 애국지사가 급증하자 증축을 거듭해 30배 이상 커졌다. 한꺼번에 3000여 명을 수용했을 정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독립운동가들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으며 강제노역과 모진 고문을 당했다. 김구가 쓴 백범일지에 따르면 아침저녁 쇠사슬로 허리를 마주 매고 노역을 했으며 어깨가 붓고 등창이 나 발이 퉁퉁 부운 상태에서도 쉬지 못했다. 그럼에도 광복을 향한 열망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3·1운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유관순 열사가 벌인 옥중 만세운동 등이 대표적이다.

인근에서 가장 키가 큰 ‘통곡의 미루나무’는 광복을 보지 못한 독립운동가의 원통함을 먹고 자랐다. 역사관 내 사형장이 건립되던 1923년에 식재했는데 사형장에 끌려가는 애국지사들이 이 나무를 붙잡고 눈물을 토해냈다고 하여 ‘통곡의 미루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와 반대로 같은 시기에 사형장 내에 심었던 ‘사형장 미루나무’는 순국선열의 한이 서려 잘 자라지 못했고 2017년 봄에 고사했다. 보존을 위해 지지대를 설치했으나 공교롭게도 광복절인 8월15일 바람에 쓰러져 현재는 그루터기만 남았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외벽의 망루. 투옥된 독립운동가를 감시할 용도로 일제가 세웠다. (사진=이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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