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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남 김범준 기자] 김현섭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도곡스타PB센터 팀장은 최근 일본 부동산에 투자하는 상품의 조기 매진을 보며 짐짓 놀랐다. 아시아 최대 소매그룹인 일본 이온그룹의 쇼핑몰에 투자하는 신탁상품이었는데 170억원 모집 한도가 2주도 안 돼 다 찼기 때문이다.
이 상품의 최저 가입금액은 3억원. 김 팀장은 “16년 장기 임대차 계약을 해서 공실 리스크가 없고 예상 금리가 9% 정도 되다보니 (고액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금세 팔렸다”며 “이온그룹의 신용등급도 우리나라의 포스코나 현대차와 같은 수준이어서 더 안전하게 여겨졌다”고 했다. 정부의 각종 규제로 국내 부동산에 대한 투자 심리가 꺾인 와중에 종종 나오는 해외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높아진 것이다.
지난달 말 서울 중구에 위치한 우리은행 본점 4층 비전홀. ‘기회의 땅, 베트남 성공 투자 세미나’에는 당초 예상보다 많은 150명여명의 참석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세미나에는 베트남 빈홈즈의 분양사인 킹랜드의 쯔엉 대표 등이 강연자로 나섰다. 세미나를 총괄한 안명숙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자산가를 중심으로 문의가 많다”며 “요즘 국내 부동산 규제가 많다보니 전통적인 투자처인 미국과 일본 외에 베트남 같은 신흥국으로 눈을 돌리는 고객도 늘었다”고 전했다. 국내 투자처가 마땅치 않아지면서 눈치를 보고 있는 ‘뭉칫돈’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읽힌다.
지난해 이후 정기예금 급증세
거액의 정기예금 증가세가 대표적인 방증이다. 정기예금은 중도 해지 부담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시중자금의 ‘파킹(Parking·대기 성격)’ 용도가 적지 않다. 올해 1분기 말 KEB하나은행을 제외한 KB국민·신한·우리·NH농협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 4곳의 10억원 이상 개인 정기예금은 전년 동기 대비 10.2% 증가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1년새 2조7433억원에서 3조4818억원으로 26.9% 급증했다. 경기 둔화 여파에 돈 줄기가 막혀있는 상황에서 두자릿수 증가율은 큰 폭이다.
이런 흐름은 지난해 이후 부쩍 심화됐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금융권에서 10억원 이상 정기예금(개인+법인)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8.5%에 달했다. 2010년 하반기 이후 최고치다. 2010년대 들어 증가율이 한자릿수 혹은 마이너스(-)였다가 지난해 이후 급등세를 탄 것이다. 정기예금 급증세는 투자처를 잃은 법인이 주도하는 가운데 개인의 몫도 작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노는 돈 많아져…추후 쏠림 리스크”
최근 들어 일선 시중은행의 PB들에게 미국 달러화에 대한 문의가 부쩍 늘어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미국 달러화는 가장 대표적인 안전자산이다. 게다가 최근 글로벌 강(强)달러 흐름까지 겹치고 있다.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주요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인덱스는 지난 7일(현지시간) 97.636을 나타냈다. 올해 초 95~96대를 횡보했다 요즘에는 97~98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2년여 만의 최고치인 1170원을 넘나들 정도로 급등하는 것도 달러화 가치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가장 대표적인 투자처인 국내 부동산은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해 3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는 1813건에 불과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1만4609건)보다 87.5% 급감했다.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올해 들어 월 2000건을 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시중자금의 단기 부동화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이데일리가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 통계를 토대로 단기부동자금을 계산해보니, 올해 2월 규모는 1101조7286억원으로 파악됐다. 1년 사이 15조2035억원 증가한 수치다. 단기부동자금은 △현금통화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머니마켓펀드(MMF) △양도성예금증서(CD) △종합자산관리계좌(CMA) △환매조건부채권(RP) △6개월 미만 정기예금 △증권사 투자자 예탁금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요즘 국내 부동산은 현금부자들도 아직 관망세가 짙은 분위기”라면서도 “놀고 있는 돈이 많다는 것은 만에하나 부동산 투자심리가 다시 살아날 경우 쏠림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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