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 별관 4층 314호 제7호 법정 앞. 법정 출입구 앞에 갑자기 긴 줄이 생겼다.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시작되는 채권자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개인회생 신청자(채무자)와 이들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받지 못한 채권자들이 법정 입장에 앞서 신분증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회생위원이 개인회생 신청자마다 갚기로 한 월별 변제액의 미납 상황 등을 일일이 통보했다.
채권자집회는 채무자가 제출한 변제계획안에 대해 채권자와 판사를 보좌해 회생을 지원하는 회생위원의 의견을 듣는 자리다.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소득으로 갚을 수 있는 금액으로 줄여 앞으로 이런 식으로 갚아나겠다는 계획안을 법원에서 승인받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다. 채무자가 주로 참석한다.
이날 40건의 개인회생 사건을 담당하는 회생위원으로 법정에 출석한 법무사 A씨는 “작년 하반기부터 자영업자 개인회생 건수가 늘기 시작했고 올해는 작년 하반기보다 더 늘고 있다”면서 “경기는 안 좋은데 정부 대출(상환)유예 정책이 끝나 대출을 갚아야 하지만 감당이 안 돼 폐업하게 됐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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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휘청대다가 서울회생법원을 찾는 자영업자가 급증하고 있다. 최근 1년간 2.7배나 급증한 자영업자의 개인회생 신청 건수를 확인한 서울회생법원의 한 판사는 “자영업자의 개인회생신청 증가 폭이 예상보다 더 크다”고 우려했다.
무너지는 자영업자가 급증한 것은 예견된 일이다.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와 달리 국내는 가계부채에 의존한 데다 후행적으로 따라오는 금리 급등의 후폭풍으로 내수 경기가 뚜렷하게 살아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월부터는 정부의 대출 상환유예 및 만기연장 지원책이 종료돼 ‘코로나 대출’의 청구서도 본격적으로 날아들고 있다.
한국은행이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분기말 기준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43조2000억원으로 1분기보다 9조5000억원 불어났다. 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액도 1조원 늘어난 7조3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에 이르렀다. 전 금융기관 연체율은 2분기 기준 1.15%로 1분기(1.0%)보다 0.15%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자영업자 중에는 여러 곳에서 빚을 진 다중채무자가 많아 경기 및 금리 변동 등 경제여건 변화나 외부 충격에 취약하다. 서울 양천구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30대 서모씨는 생활자금과 학원운영을 위해 1·2금융권에서 총 9500만원을 빌렸다.
부채가 많아지자 일부 학원생의 악의적 민원으로 시작된 매출 감소는 경기 불황과 맞물려 금세 큰 충격으로 번졌다. 그는 결국 지난 6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서씨는 “기존 채무 7500만원에다 학원을 열기 위해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보증서를 받아 추가로 은행 대출을 2000만원 빌렸다”며 “월 500만~600만원의 고정 지출 중에 절반 정도는 대출 원리금을 갚는 금액이었다”고 말했다.
문제는 자영업자 개인회생이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내년에도 소비침체가 이어지면서 내수 경기 회복세가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고물가·고금리 상황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30일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내년 민간소비증가율을 1.9%로 예상했다. 지난 8월 전망치보다 0.3%포인트 하향 조정한 수치다.
반면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기존 2.4%에서 2.6%로 0.2%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자영업자 디폴트 위험성을 경고하는 연체율도 급등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저축은행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9월말 7.49%로 6월말보다 1.14%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말(3.31%)에 견주면 두 배 이상(4.18%포인트) 치솟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질서있는 구조조정’을 위한 지원책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자영업자 채무의 일정부분은 정부의 집합금지 조치 및 영업제한 등 사회적 거리두기 실시에 따른 것”이라며 “정부의 재정지원을 좀 더 적극적으로 펼치고 자영업자의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법률적 지원이나 안내 등을 잘 해야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