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인천의 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휘두른 흉기에 50대 여성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사망했다. 피해 유가족은 지난 1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동주택 내 동일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법안 제정 필요성을 촉구했다. ‘갑질’을 막을 수 있는 법은 마련되어 있지만 인사권을 쥔 입주자 대표 앞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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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유족과 동료들은 아파트 입주자대표 A씨가 관리사무소장 B씨를 지속적으로 괴롭혀왔다고 주장했다.
A씨는 사건이 발생하기 열흘 전부터 공동 인감으로 등록한 아파트 관리비 통장을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 단독 인감으로 마음대로 교체를 했다. A씨는 “B씨가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기 때문에 내가 관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B씨와 갈등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23조에 따르면 아파트 장기수선 충당금은 별도 계좌로 예치해 관리하되 관리사무소장의 직인을 등록토록 되어있다. 다만 관리소장의 직인 외에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인감을 복수로 등록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이 사건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게재한 청원인은 “지난 5월 서울시 성북구에서 아파트 입주민의 갑질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경비원 사건으로 공동주택 종사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공동주택관리법 일부 조항이 신설됐다”고 적었다. 이어 “공동주택관리법에서는 아파트 관리와 관련해 입주자대표회의가 의결하고 관리사무소장이 집행토록 되어 있다”며 “단순하게 의결한 사항을 집행만 하는 구조인데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정신적·물적·징벌적 책임은 관리소장에게 돌아온다”고 호소했다.
주택관리사 비극 3개월마다 계약 갱신 관행…유명무실 ‘공동주택관리법’
그동안 아파트 입주민과 관리사무소(경비원 포함) 직원 사이의 갑질과 갈등은 빈번하게 발생했다. 작년 12월 서울 노원에서, 지난 9월 경기 수원에서는 입주민 대표가 관리소장에게 욕설을 퍼부어 논란이 생기는 등 최근 4년동안 전국에서 아파트 관리소장 7명이 업무 스트레스로 목숨을 잃었다.
주택관리사들은 입주민 폭행과 해고 위협 등 갑질 피해가 끊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비극이 발생한 배경으로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의 유명무실함을 지적했다.
관리소장은 아파트와 위탁 계약을 맺은 회사에서 파견된 신분이기에 입주자 대표회의를 상대로 적극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인 신고가 있어야 절차가 진행되고 부당간섭이 확인되더라도 직접 과태료가 부과되는 경우도 드물다.
대한주택관리사협회는 이 같은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관리소장 최소임기제, 부당간섭 금지제도 강화 등 근본적인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황장전 대한주택관리사협회 협회장은 지난 6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관리소장의 임기는 최소한 업무처리를 할 기간 정도는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협회장은 “일부 아파트에서는 관리소장 임기를 3개월로 정해놓고 단기계약을 이어간다”며 “계약을 3개월만 하고 계속 갱신하는 형태로 유지하다보니 입주자 대표 회장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경비원들도 마찬가지다. 경비원들은 관리소장 눈치를 또 봐야한다. 그러다보니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고 그 이면에는 3개월 계약이라는 부조리가 숨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