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상속세, 이젠 부자만의 세금 아니다

  • 등록 2021-10-14 오전 5:00:00

    수정 2021-10-14 오전 5:00:00

[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부의 세습을 막기 위한 정의로운 세금인가, 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투자를 가로막는 구시대적 잔존인가.

삼성 총수 일가가 최근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고자 계열사 주식 2조원가량을 매각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속세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최고세율(50%)에 최대주주 할증률 20%, 자진신고 공제율 3%까지 적용하면 최대 60%에 달한다. 국내 최고 부자 가족인 삼성 일가도 이를 감당하지 못해 주식 매각이란 초강수를 둔 셈이다.

서울 아파트 한 채 가진 사람도 과세 대상

과도한 상속세는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종전 2.3%에서 1.97%로 낮추는 등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향후 삼성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영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면 일자리 창출은 요원해질 것이다. 지난 12일 하루 새 삼성 계열사 주식이 2~6%대 폭락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중소·중견 기업은 사정이 더 취약하다.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지분을 다른 기업에 매각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들린다. “기업가 정신이 약해진다” “상속세 세 번이면 경영권 넘어간다” 등의 말이 나돈다고 한다. 지난해 중소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중기 가업 승계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보면 조사에 응한 대다수 기업(94.5%)은 가업 상속의 걸림돌로 ‘막대한 조세 부담’을 꼽았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발간한 ‘OECD 회원국들의 상속 관련 세제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미 소득세를 낸 자산에 다시 고율의 상속세를 부과하는 건 ‘이중과세’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상속세는 부자들이 내는 세금이란 인식이 사회 깊숙이 뿌리 내렸다는 데 있다. 부작용을 얘기하는 사람은 ‘부자 옹호론자’로 찍히기 십상이었다. 헌법재판소도 1997년 상속세 제도에 대해 ‘재산 상속을 통한 부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화해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규정했다.

자본이득세·유산취득세 등으로 바꿔야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한국 경제(명목 GDP)는 현행 상속세의 큰 틀이 적용된 2000년 651조6340억원에서 2020년 1898조1930억원으로 3배나 커졌다. 소득 투명성도 크게 향상됐다.

더욱이 상속세는 더는 ‘있는 자’의 문제가 아니다. 아파트 값이 크게 오르면서 집 한 채 가진 사람들조차 상속세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부동산 정보업체 경제만랩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부터 12월까지 분양된 서울 아파트 중 지난달에 실거래가 이뤄진 10개 단지를 조사한 결과 이들 아파트 실거래 가격은 분양가 대비 평균 128.3%(평균 10억2000만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전 재산 10억원 미만이면 일괄공제(5억원)·배우자상속공제(5억원)로 세 부담이 크지 않았지만, 이는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상속받은 보유 자산을 팔 때까지 세 부담이 미뤄지는 ‘자본이득세’나 상속인 각자가 실제로 나눠 받는 재산 각각에 과표 구간·세율을 적용하는 ‘유산 취득세’ 등의 방식으로 상속세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발인식이 지난해 10월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영결식에 참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이 버스에서 내리는 홍라희(가운데) 여사와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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