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와 레미콘은 죄가 없다[생생확대경]

정부의 ESG 가이드라인으로 무리하게 친환경에 사활
국토부 "4월 정상화" 목표 설정했으나 사실상 무리
"비오면 공사 중단, 장마만 기다린다"…'웃픈' 하소연
매년 관련 문제 되풀이될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시멘트·레미콘 업계, 정부 정책에 서로 반목만 심화
  • 등록 2023-04-17 오전 5:44:00

    수정 2023-04-17 오전 9:27:58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대한민국 건설 현장이 사실상 멈췄다. 때 아닌 시멘트 부족 현상 때문이다. 질서정연하지 못한 정부의 감독·관리가 원인이지만 엉뚱하게 시멘트와 레미콘 업계에서 반목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는 또다시 사태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공수표를 날리고 있다.

경기 안양시에 위치한 한 레미콘 공장에 믹서트럭이 줄지어 세워져 있다. (사진=뉴스1)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확대와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시멘트 업계가 대대적인 친환경 보수 작업에 들어서면서 시멘트 품귀 현상이 발발했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시멘트 업계는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18년보다 12% 줄여야 한다. 2050년에는 53%까지 절반 이상을 감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시멘트는 t당 가격이 10만원대 수준으로 높지 않아 탄소배출권을 거래하기도 어려운 품목이다.

업계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국 시멘트 제조 설비(킬른) 약 3분의 1에 대한 보수에 들어가면서 시멘트 공급난이 심해졌다. 여기에 화물연대 파업으로 공사 일정이 밀리고 광주광역시 아파트 붕괴 사고 이후 콘크리트 품질 기준이 강화되면서 시멘트 수요가 더욱 늘어나는 문제까지 겹쳤다.

국토교통부는 킬른 정기보수 일정이 마무리되는 4월 이후부터는 시멘트 수급이 안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코웃음을 친다. 최근 만난 업계 관계자는 “빨리 장마철이 되기를 바란다”고 푸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비가 오면 자연스레 공사를 중단해 시멘트 공급난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결국 6~7월까지도 공사 현장에서 수급이 정상화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업계에서는 통상 시멘트 재고가 100만t 이상은 확보돼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비수기 때 쌓아둔 재고와 생산된 제품이 함께 출하돼야 공사현장에서 소화가 가능하다. 현 시점에서 쓸 수 있는 시멘트 재고는 30만t가량으로 파악된다. 생산이 정상화하더라도 공급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필요한데, 정부는 생산 정상화 시점만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상화 방안 중 하나로 꼽히는 ‘수출용 시멘트의 내수 전환’도 어폐가 있다. 한국은 시멘트를 많이 생산하고 또 그만큼 많이 쓰는 국가다. 수출 비중은 5~10%가량에 그친다. 물론 현 시점에서는 그마저도 귀한 몸이지만 사태를 해결하는 대책까지는 될 수 없다. 더욱이 수출 물량을 조절할 경우 결국 해외 구매측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것은 오롯이 기업의 몫이다. 계약 미이행에 따른 배상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시멘트 품귀 현상이 반복될 것이라는 문제 제기도 이어진다. 탄소 중립 관련 시설 투자는 업계에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환경 투자를 미뤘다가는 생산 원가나 비용 부담으로 전가돼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2027년까지 시멘트 부족 현상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비관했다.

시멘트 부족이 이어지다 보니 시멘트·레미콘 업계에서는 원색적인 비난도 들린다. 원래 시멘트·레미콘 업계는 아옹다옹하는 관계지만 수요가 있는데도 공급이 원활치 않다 보니 잡음이 연출되는 것이다.

레미콘 업계에서는 시멘트 회사들이 개·보수를 이유로 생산량을 조절하는 것은 가격 인상을 위한 꼼수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시멘트 업계는 설비시설 개조 및 작년 화물연대 파업으로 생산량 감소 및 재고 부족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의 판단 착오가 엉뚱하게 업계 간 갈등만 키우는 셈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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