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세대는 지워져야 할까? 서글프고 뭉클한 '20세기 블루스'

미국 극작가 수잔 밀러 희곡 국내 초연
60대 여성 4명 통해 미국의 현대사 투영
존재 부정당하는 여성들 섬세하게 그려내
우미화·성여진·박명신·강명주·이지현 등 출연
  • 등록 2023-06-01 오전 5:50:00

    수정 2023-06-01 오전 5:50:00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나한테는 너희들이, 역사의 시간표니까!”

60대 여성 사진작가 대니(우미화 분)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개인 회고전을 앞두고 40년간 촬영해온 친구들의 사진을 처음 대중에 공개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친구들은 대니의 제안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답답한 대니는 친구들을 향해 외친다. “너희들이 로클롤이고, 우주선 발사고, 시민 평등권이라고. 가장 엄청난 변화들이 기록된 수십 년의 역사가 바로 너희들이야.”

연극 ‘20세기 블루스’의 한 장면. (사진=두산아트센터)
연극 ‘20세기 블루스’는 60대에 접어든 여성 4명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원작은 미국 극작가 수잔 밀러의 희곡. 2016년 미국 초연 당시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존재를 부정당하는 여성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초연으로 지난 5월 30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막을 올렸다. 연극 ‘달콤한 노래’, ‘썬샤인의 전사들’의 연출가 부새롬이 연출을 맡았다.

극을 이끄는 4명의 여성은 1955년 즈음 태어난 세대들이다. 지금은 각자 다른 직업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대니는 저명한 사진작가, 실(성여진 분)은 남편과 별거 중인 부동산 중개인, 맥(박명신·강명주 분)은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동성애자, 개비(이지현 분)는 동물병원을 운영 중인 열정적인 수의사로 등장한다. 이들은 젊은 시절 구치소에서 처음 만난 사이. 구체적인 언급은 없지만, 4명의 주인공이 60~70년대에 사춘기와 대학 시절을 보낸 것을 생각하면 반전 시위와 인권 운동 등을 하다 구치소에서 만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의 대화는 남편, 치매에 걸린 어머니, 직장과 섹스 등 평범한 일상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러나 극이 전개되면서 이들의 대화 속에 미국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투영된다. 냉전과 메카시즘, 마틴 루터 킹을 시작으로 여성인권과 성평등 문제를 제기한 1991년 흑인 여성 변호사 아니타 힐의 폭로, 2001년 9.11 테러와 2008년 미국 금융위기, 2013년 흑인 인권 운동 BLM(Black Lives Matter)까지 미국의 굵직한 사건들이 이들 네 여성의 삶을 어떻게 관통해왔는지 보여준다. ‘역사의 종언’을 통해 “역사는 진보한다”고 주장한 정치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이야기를 꺼낸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언급하는 장면에선 폭소도 터져나온다.

연극 ‘20세기 블루스’의 한 장면. (사진=두산아트센터)
대니가 친구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싶은 이유는 이들과 함께 해온 수많은 순간들 또한 역사의 일부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여성이자 노인이며, 성소수자이기도 한 친구들은 자신들의 삶이 역사로 ‘전시’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이 든 세대는 지워져야만 하는가”라는 대니의 한탄은 이 작품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잘 보여준다. 삶의 애환을 담은 음악 블루스처럼, 네 여성의 이야기는 서글프면서도 뭉클하다.

아쉬운 점 하나는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미국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를 투영한 ‘20세기 블루스’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배우 이주실이 대니의 엄마 베스 역, 배우 류원준이 대니의 아들 사이먼 역으로 함께 출연한다. 두산아트센터가 ‘Age, Age, Age 나이, 세대, 시대’를 주제로 선보이는 ‘두산인문극장 2023’의 두 번째 기획 공연이다. 오는 17일까지 공연한다.

연극 ‘20세기 블루스’의 한 장면. (사진=두산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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