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지방 중소도시]10대 도시였던 전북 군산‥지금은 빈집 투성이

군산, 12위 도시서 50년만에 빈집 100채 중 8채
옛 도심 인구 3분의 1로 줄어..신도시 '빨대 효과'
주민들 "재생사업 기대감 크지않아"
  • 등록 2013-10-22 오전 7:20:00

    수정 2013-10-22 오전 9:05:11

[전북 군산=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지난 18일 오전 찾은 전라북도의 대표적 항구도시 군산. 해풍을 맞으며 버스터미널 북쪽으로 400m쯤 걷자 오른편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낡은 단독 주택들이 즐비했다. 미로 같은 골목 안쪽에는 군데군데 거미줄 처진 빈 집들이 들어서 있다. 사람 손을 타지 않아 금세라도 쓰러져 내릴 듯 위태로운 모습이다. 몰락한 어촌의 곳곳에 이런 공가와 폐가들이 산재해 있다.

이곳 중동 주민인 김한자(여·72)씨는 “어선이 드나들던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가 넉넉하고 활기찼다”며 “새만금 방조제 설치로 뱃길이 끊겨 어업을 못하게 되고 신도시 개발로 사람들까지 떠나면서 동네에 빈 집만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군산 중동의 주택가 사이에 위치한 빈 집이 곧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오 기자)
중동을 등지고 해안을 따라 서쪽으로 약 1.5km 떨어진 옛 도심 중심가에 다다르자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때 항구와 시청, 법원 등 관공서가 운집해 군산 최대 번화가였다는 중앙·영화·장미동 일대의 현재 모습은 황량하기만 했다.

상가는 두 집 건너 한 집 꼴로 문을 닫았다. 평일 오후였지만 건물 출입구를 아예 폐쇄한 곳도 적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쌀 반출의 거점으로 지목된 이래 국내 대표적 개항도시로 수십년 간 번창했다는 상권은 빛 바랜 건물과 함께 시들어 있었다. 영화동 상인 김복자(여·66)씨는 “저녁 7시만 돼도 사람 발길이 끊기고 거리가 칠흑 같이 어두워져 가게 문을 일찍 닫는다”며 “유령 도시처럼 공동화가 심해지면서 장사를 아예 공치는 날도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군산의 옛 도심인 영화동 일대 거리가 활력을 잃고 깊은 침체에 빠진 모습이다. (사진=박종오 기자)
인구 증가 정체… 도심 100채 중 8채는 빈집

이러한 옛 도심의 쇠락은 예견된 일이었다. 인구 성장이 멎은 지방 도시가 개발 사업으로 공간을 확장하면서 불균형이 심해진 탓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960년 9만437명이 거주해 국내 12위의 대도시였던 군산은 2010년 기준 26만546명으로 전국 230개 시·군·구 중 7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1975년 27만명을 넘어선 뒤 인구 수에 큰 변동이 없다.

저성장이 본격화하며 비중있게 추진된 게 기업 유치와 신(新)도심 개발 사업이다. 토지 개발을 발판으로 부흥의 새 계기를 마련하고 균형 발전을 꾀한다는 취지였다. 1990년대 들어 원도심 남쪽 2km 지점의 나운동과 지곡동, 수송동 일대에서 대단위 택지 개발사업이 착수됐다. 이후 새 아파트가 우후죽순 들어서며 인구를 빨아들이는 빨대 효과가 나타났다.

주변 지역에 미친 영향은 상당했다. 전라북도가 발표한 ‘지역개발 백서’에 따르면 해신·월명·중앙동 등 군산시의 옛 도심 3개동의 인구는 2007년 2만3500명에서 작년 말 1만5500명으로 무려 34% 줄었다. 방치된 빈 집도 2000년 1845가구에서 2010년 2770가구로 925채 늘었다. 아파트를 제외한 전체 단독·연립·다세대주택(3만4573가구) 100채 중 8채 꼴이다. 현재 군산시가 정비 대상으로 파악한 공·폐가 만도 583채에 달한다.

▲전북 군산 중동의 주택가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노후 단독 주택들이 다닥다닥 엉겨붙어 있다. (사진=박종오 기자)
10년 넘게 추진된 도시 재생사업, 효과는 아직…

군산시도 노쇠한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1년부터 2단계에 걸쳐 사업비 600여억원을 들여 총 23개 지구에 대한 주거 환경 개선사업을 추진했다. 낡은 집을 전면 철거한 뒤 아파트를 짓거나 도로와 주차장, 공원 등 기반시설을 정비해 주는 방식이다. 후자의 경우 주민은 정부의 저리 융자를 받아 직접 집을 고쳐쓸 수 있다. 이밖에 군산시는 산비탈의 노후 주거지를 녹지로 탈바꿈하는 고지대 공원화사업과 옛 도심의 근대 건축물을 역사 체험 공간을 조성하는 근대역사경관 조성사업도 함께 추진 중이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의 기대감은 낮았다. 가시적 효과로 이어지지 못한 때문이다. 중동 주민 이봉자(여·76)씨는 “당장 생계가 막막한데 집 고치라고 돈을 빌려줘도 갚을 재간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영화동 상인 김인숙(여·66)씨는 “낡은 상가를 신축하고 싶어도 필지가 작고 비뚤비뚤해 손 댈 수가 없다”며 “시에서 대형 개발사업만 밀어붙일 게 아니라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도 늘려 작은 블록 단위로 주민들이 원하는 개발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재생사업을 마쳤지만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곳도 적지 않았다. 이날 오후 7시쯤 찾은 군산 신흥동 15-1번지 일대는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군산 신흥동 주택가에 빈 집이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다. (사진=박종오 기자)
2004년 도로를 정비하는 주거지 개선사업이 완료됐지만 ‘재생’이란 말이 무색하게 마을 곳곳에는 지붕과 출입구가 뜯긴 흉가가 즐비했다. 사업 10년 만에 군산시가 다시 낡은 주거지를 철거하고 공원을 만들겠다며 나선 때문이다. 주민 박형자(여·66)씨는 “10년 전 시가 낡은 주거지를 정비한다고 해 거기 발맞춰 정부 대출을 받아 평생 살 집을 신축했는데 꼼짝없이 다른 곳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김춘애(여·65)씨는 “보상을 받아도 신도시는 집값이 너무 비싸 입주할 수도 없다”고 푸념했다.

현재 군산에서는 미장지구와 동부권 군산역 일대 내흥동과 성산면에서 대형 택지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옛 주거지가 시든 채 도시는 계속 밖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신개발지 수송동에 들어선 아파트에 입주했다는 주민 김모(54)씨는 “근본적으로 사람이 늘지 않는 한, 재생사업이나 택지개발로 한 곳의 인구가 늘어나면 다른 곳이 소외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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