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레텔)는 내 옷 속에 있던 도끼를 찾아 도망을 못 가게 오빠(헨젤)와 엄마의 다리를 싹둑…. 엄마는 날 구박하다 죽었고 오빠는 날 무시하다 죽었죠….’
인터넷에 ‘잔혹 동화’라는 이름으로 떠도는 10대 청소년들의 자작 소설 중 일부다. 해맑은 동심(童心)을 그려야 할 동화가 ‘엽기·잔혹 코드’와 만나면서 잔인하고 자극적으로 일그러지고 있다. 우화(寓話)의 ‘해피 엔딩’은 유혈이 낭자한 무시무시한 결말로 탈바꿈하고,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섬뜩한 ‘잔혹동화’ 돌려 읽기가 유행이다.
주부 한모씨는 지난해 말 중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친구에게 빌렸다는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를 읽고 화들짝 놀랐다. 신데렐라, 백설공주 등 널리 알려진 동화가 사실은 잔혹하고 끔찍하다며, 이들의 원전(原典)을 소개한 일본 작가의 책이었다. 근친상간과 잔인한 형벌을 담은 줄거리는 엽기의 극치였다. 한씨는 “표지에 깨알만하게 ‘19세 미만 판매 금지’라는 안내문이 적혀 있었지만, 딸아이는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며 “이런 책이 친구들 사이에 화제가 돼 같은 반 학생들이 돌려본다는 얘기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이 호기심 차원의 잔혹동화 읽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자극적인 ‘나만의 잔혹동화’를 경쟁적으로 만들어 올리는 것도 문제다. 네이버·다음 등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는 잔혹동화를 만들어 올리는 동호회가 수십개에 달하고, 창작 게시물은 2000개가 넘는다. 15세에 불과한 한 네티즌이 지난해 2월 만들어 올린 ‘잔혹동화 100제(題)’는 잔혹한 동화를 쓸 수 있는 100가지 주제로 ‘퍼가기’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잔혹동화 열풍에 대해 전문가들은 단순한 청소년의 호기심 차원으로 넘어가기엔 도가 지나치다는 의견이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리는 요즘 아이들은 인터넷 외에는 스트레스를 풀 수단을 알지 못한다”며 “인격이 한창 형성되는 시기에 잘못된 자극을 추구하다 보면 성인이 된 후에 공격적 성향을 지니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한국청소년상담원 박관성 선임연구원은 “초등학생들은 현실과 환상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잔인한 소설의 내용을 실제 세계의 모습으로 착각할 수 있다”면서 “살인이나 폭력과 관련한 극단적 단어들의 검색을 제한하는 등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