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나라 각 분야에서 ‘히든챔피언’으로 불리며 주목받던 중견·중소기업(이하 중기)들이 최근 잇달아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이들 기업은 대개 1개의 히트상품을 앞세워 승승장구한 후 후속타가 뒷받침되지 않아 실적이 악화되는 수순을 밟았다. 중기가 선발로 어느 정도 시장을 형성하면 뒤이어 대기업이 진입, 시장을 장악하며 어려워진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中企, ‘한 번의 대박’ 이후 내리막길
엠텍비젼과 코아로직은 한때 우리나라 ‘팹리스’(반도체개발 전문회사) 산업을 이끄는 쌍두마차였다. 이들 기업은 2000년대 초 휴대폰용 카메라를 구동하는 카메라프로세서 분야에 선도적으로 진입, 2004년에 코스닥 상장과 함께 나란히 1000억원 이상 매출액을 올리며 주목 받았다. 시가총액은 한 때 1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이후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고, 카메라프로세서는 다양한 미디어 기능을 지원하는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로 진화하면서 이들 기업은 위기를 맞았다. 특히 삼성전자와 퀄컴 등 대기업이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분야에 잇달아 진입, 이들 중기는 실적 하락세가 이어졌다. 결국 엠텍비젼은 2014년에 코스닥에서 퇴출됐고, 코아로직은 이듬해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혁신·변화에 취약한 中企, M&A 등이 방법
이들 중기가 한 번 성공을 거둔 후 추가적인 도약에 실패하는 이유로 △대기업의 시장 진입 △한정된 제품군·거래처 △기술혁신 부족 등이 꼽힌다. 박양균 중견기업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중기들은 규모 탓에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중기들이 어렵사리 만들어놓은 시장에 대기업이 후발주자로 진입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때 중기간 경쟁이 활발했던 국내 로봇청소기 분야도 현재 대기업들이 독식하게 된 경우다. 수백만 원대 외산 일색이던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은 2005년을 기점으로 유진로봇과 마미로봇, 모뉴엘 등 중소기업들이 활발히 진입, 30만원대 중저가 제품을 출시하며 대중화가 열렸다.
하지만 이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로봇청소기 시장에 후발주자로 가세하며 판세가 역전됐다. 마미로봇과 모뉴엘 등은 이미 부도가 난 상황이다. 현재 국내 로봇청소기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선두다툼을 하는 가운데, 유진로봇(056080)이 3위로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중기가 한 번의 성공에 머물지 않고, 성장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술혁신 △글로벌 시장 진출 △인수합병(M&A) 활성화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전 벤처기업협회장)는 “국내 중기는 대부분 특정 제품군과 거래처에 국한된 사업을 하고 있다”며 “내수시장을 벗어나 해외시장으로 판로를 확대하는 한편, 기술혁신을 통해 국내외 대기업과도 당당하게 경쟁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에스엔유 창업자)는 “중기는 창업 초기 아이템을 끝까지 가져가는 경우가 없으며 지속 변화해야만 성장이 가능하다”며 “M&A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