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방영돼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 영웅’ 역시 학교폭력이 소재인 액션물이었다. 너무나 연약해 보이지만 머리를 써서 가해자들과 맞서 싸우는 영웅담이다. 웹툰 원작의 이 작품은 이른바 ‘학원 액션물’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건 웹툰, 웹소설에 너무도 많이 쏟아져 나와 그것이 하나의 장르가 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학교폭력이라는 소재는 사회적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다만 이들 작품들은 이러한 폭력이 어째서 계속 벌어지고 있는가 하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보다는, 그런 문제들이 야기하는 고구마 정서에 한바탕 사이다 판타지를 주는 경향이 짙다. 가해자들에게 당한 피해자들이 보여주는 복수는 의외로 그리 어렵지 않게 구현된다. 그것이 이른바 ‘학원액션물’을 보는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약자들이 폭력을 당하고 그래서 돈과 권력을 가진 가해자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이야기들은 학교폭력 이외에도 넘쳐난다. 학교폭력은 그것이 청소년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이라는 점에서 훨씬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일 뿐이다. ‘펜트하우스’처럼 치고받는 막장 드라마들이나, 그 많은 형사물들이 대부분 복수극을 밑그림으로 깔고 있고, 그 안에 피해자였던 약자들이 심지어 범죄를 동원해 가해자를 처단하는 이야기는 저 학교폭력을 담은 서사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특히 최근에는 ‘모범택시’나 ‘빈센조’처럼 사적 복수극이 하나의 장르화돼 등장하는 경우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들 복수극들은 한 마디로 시원시원하다. 가해자들은 처절하게 응징 당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최근 파트2를 공개해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는 다른 느낌이다. 이 작품은 결코 쉽지 않은 복수의 과정을 그리고 있고 나아가 가해자가 처벌받는 것만이 아니라 피해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동시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가해자에 대한 복수 혹은 처벌은 피해자들에게 끝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걸 분명히 한 점은 인상적이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것 중에 되찾을 수 있는 게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나의 영광과 명예 오직 그것뿐이죠. 누군가는 그걸 용서로 되찾고 누군가는 복수로 되찾는 거죠. 그걸 찾아야만 비로소 원점이고 그제야 동은 후배의 열아홉 살이 시작되는 거니까요.” 이 극중 대사가 말해주는 건 피해자들은 이미 피해를 당했을 때 그 어떤 것으로도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극중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의 온 몸에 남아 있는 화상 자국처럼 말이다. 그래서 복수(처벌)를 한다고 해도 그걸로 모든 상처가 치유될 수는 없다.
학교폭력을 포함해 우리네 사회에는 폭력부터 사건, 사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이들 피해자들이 어떻게 해야 생존해나갈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제대로 된 진실이 밝혀지고 가해자가 있다면 처벌을 받는 건 당연한 시작점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 피해자들을 사회가 어떻게 끌어안고 생존할 수 있게 해주는가가 다음 스텝이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