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80년대. 중국인의 발이 안 뻗친 곳이 없다지만 슈퍼마켓에도 없는 간장과 청주, 생강뿌리 같은 식재료는 쓰레기취급을 받기 일쑤였던 터. 하지만 결국 캔 홈은 대접받지 못한 간장·청주·생강뿌리와 돼지고기를 ‘융복합’해 탕수육을 만들어냈다. ‘탕수욕’이 ‘탕수육’으로 승화한 순간이다. 결과는 대성공.
그런데 요리가 훌륭해서만은 아니었나 보다. 영국인의 입맛에 잘 맞은 ‘달콤·시큼’에는 연원이 있었던 거다. 중세시대에 영국인이 즐긴 음식의 대표적인 맛이 그 두 가지였단다. 콜린 스펜서라는 요리학자가 ‘돼지고기 탕수육’이 놓인 식탁 앞에서 깔끔한 정리를 내놨다. “우리가 좋아하는 이 요리의 맛은 과거에 우리 조상이 전통적으로 먹던 음식의 맛을 다시 느끼기 위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사연과 곡절을 품지 않고 세상에 나온 음식이 과연 있을까. 수월하게 탄생했다, 아니다의 정도 차만 있을 텐데. 어쨌든 귀한 음식이든 지독한 음식이든, 인류사에서 독특한 레시피를 몇가지나 건져낼 수 있겠는가. 영국의 유명 음식비평가인 저자가 쉽지 않은 그 일을 한번 해봤다. ‘세상서 가장 매혹적인 음식의 발명’이란 타이틀을 달 만한 100가지 요리를 선별하고 집요하게 들여다봤다. ‘뭘 그렇게까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유가 있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현대까지 음식역사 4000년을 뒤집어본 기록이라 그렇다. 방식은 100명의 요리사와 100권의 저서를 긴밀하게 엮는 것. 저자가 꼽은 가장 맛있는 요리는 그 과정에서 선별됐다. 특이하다면 ‘기원을 가진 레시피’가 조건이었다는 것.
연대기 구성이지만 백화점식 소개와 나열을 넘어선다. ‘역사로 읽는 요리, 요리로 읽는 역사’의 중요한 장면을 구성하는 데 몰두했다. 앞의 ‘돼지고기 탕수육’처럼.
▲4000년 전 레시피가 궁금하다면
생경한 음식을 따라 내려오다가 그래도 만만하게 눈에 띄는 게 있으니 ‘파스타’다. 1154년에 쓰였다는 레시피부터 훑어보자. ‘시칠리아 트라비아에서는 밀가루를 길게 뽑아 음식을 만들었다. 양도 풍부해서 칼라브리아지역의 여러 도시, 이슬람교지역과 기독교지역에도 공급할 수 있었다.’
이게 전부다. 저자는 오로지 이 문구를 근거로 파스타를 둘러싼 역사를 증명하고 추론한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는 이미 파스타를 만드는 기술이 완전체를 이뤘단다. 양도 충분해 수출도 할 수 있었다는데. 이때 파스타 개발의 핵심은 뭐였을까. 국수처럼 길게 뽑는 것? 나비모양 혹은 벌레모양? 아니다. 바로 ‘건조’란다. 건조할 수 있다는 건 오래 저장해 주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충직한 실용성 덕에 파스타는 이후 이탈리아의 ‘국민음식’으로 기꺼이 승격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로마의 역사는 ‘소스’가 썼다
과거나 현재나 별로 다르지 않은 장면. 불 앞에서 프라이팬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유려한 손짓, 익어가는 요리를 내려다보는 진지하지만 엷은 미소. 이 연출만 상상한다면, 맞다. 책에서 가장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레시피다. 물론 제목이 대놓고 내건 것처럼 100가지 성찬은 100가지 레시피를 친절한 간판처럼 달고 있다. 그러나 이 레시피를 따른다고 해도 1000년 전, 100년 전의 그 요리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왜냐고? 당시만의 ‘정통요리법’이라서다.
저자는 굳이 그 맛과 모양대로 만든 요리를 현대의 독자에게 먹이고 싶은 의도가 없는 거다. 그래서 과거 특정 시기에 만들었던 음식을 현대버전으로 애써 번역해 소개하지 않았다. 그저 그 시대가 그 음식을 어떻게 차려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독특한 저자의 취향이기도 하겠지만 덕분에 책은 요리서보단 역사서에 훨씬 근접한 그림을 그려낸다.
▲미식 향한 질긴 열망, 끊긴 적 없다
100가지 음식 중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미식에 대한 열망’이다. 때론 생존을 위해 때론 식욕을 위해 인류는 모든 육지와 바다를 헤집고 다니며 뱃속의 기쁨을 위한 탐구에 나섰다. 저자가 인용한 프랑스 미식가 장 앙텔름 브리아샤바랭의 표현 그대로 ‘삶을 지배하는 주체’가 미식이었던 셈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저자는 역사 속 수많은 요리사가 요리만 한 게 아니라 미식의 레시피를 세세히 남겨놓으려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요리가 허공에 흩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을 ‘신의 사명’으로 여겼다는 거다.
옛 요리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자는 ‘신의 사명’으로 휘어지는 요리상을 책 안에 차렸다. 깨알(?) 같은 글씨로 600페이지 한상이다. 억지로라면 시도조차 못했을 일이다. 재미있는 건 현대로 옮겨 올수록 레시피가 복잡하고 길어지는 현상인데. 사는 일이 점점 단순치 않더란 철학까지 요리법 한토막으로 명쾌하게 드러낸 셈이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어쨌든 서양음식 100색이라는 것. 아마도 저자는 동양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나 보다. ‘돼지고기 탕수육’을 제외하곤 말이다. 잘 차려진 밥상에 젓가락 보낼 곳이 없더라고 해도 할 말은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