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수욕? "대체 이 중국쓰레기가 여기 왜 있죠"

4000년을 기록한 음식 연대기
100가지 엄선해 역사 재조명
파스타, 800년전 건조기술로 탄생
이집트빵 레시피 기원전에 쓰여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 시절엔
400가지 소스비법 책 발견도
………………………………
역사를 만든 백가지 레시피
윌리엄 시트웰|608쪽|에쎄
  • 등록 2016-04-06 오전 6:17:00

    수정 2016-04-06 오전 6:17:00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돼지고기 탕수육. 영어로 붙인 ‘요리학명’은 ‘스위트 앤드 사워 포크’. 우리말로 굳이 풀자면 ‘달콤하고 시큼한 돼지고기’. 이 음식을 영국인에게 맛보인 데는 중국계 미국인 캔 홈이란 요리사의 공이 컸다. 미국 시카고 차이나타운에서 정말 생존을 위한 식사만 했다던 그가 마치 그 시절을 보상받듯 BBC에서 ‘캔 홈의 중국요리’란 프로그램을 꿰차면서다. 재능은 있었나 보다. 학생 땐 파스타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300달러를 벌기도 했다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보장된 성공은 아니었다. 영국서 집을 빌려 살 때 청소 아주머니가 집안 곳곳에 널린 중국요리 식재료를 보고 이렇게 소리를 지르기도 했단다. “아니 대체 이 중국 쓰레기가 여기 왜 있는 거죠?”

때는 1980년대. 중국인의 발이 안 뻗친 곳이 없다지만 슈퍼마켓에도 없는 간장과 청주, 생강뿌리 같은 식재료는 쓰레기취급을 받기 일쑤였던 터. 하지만 결국 캔 홈은 대접받지 못한 간장·청주·생강뿌리와 돼지고기를 ‘융복합’해 탕수육을 만들어냈다. ‘탕수욕’이 ‘탕수육’으로 승화한 순간이다. 결과는 대성공.

그런데 요리가 훌륭해서만은 아니었나 보다. 영국인의 입맛에 잘 맞은 ‘달콤·시큼’에는 연원이 있었던 거다. 중세시대에 영국인이 즐긴 음식의 대표적인 맛이 그 두 가지였단다. 콜린 스펜서라는 요리학자가 ‘돼지고기 탕수육’이 놓인 식탁 앞에서 깔끔한 정리를 내놨다. “우리가 좋아하는 이 요리의 맛은 과거에 우리 조상이 전통적으로 먹던 음식의 맛을 다시 느끼기 위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사연과 곡절을 품지 않고 세상에 나온 음식이 과연 있을까. 수월하게 탄생했다, 아니다의 정도 차만 있을 텐데. 어쨌든 귀한 음식이든 지독한 음식이든, 인류사에서 독특한 레시피를 몇가지나 건져낼 수 있겠는가. 영국의 유명 음식비평가인 저자가 쉽지 않은 그 일을 한번 해봤다. ‘세상서 가장 매혹적인 음식의 발명’이란 타이틀을 달 만한 100가지 요리를 선별하고 집요하게 들여다봤다. ‘뭘 그렇게까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유가 있다. 기원전 2000년경부터 현대까지 음식역사 4000년을 뒤집어본 기록이라 그렇다. 방식은 100명의 요리사와 100권의 저서를 긴밀하게 엮는 것. 저자가 꼽은 가장 맛있는 요리는 그 과정에서 선별됐다. 특이하다면 ‘기원을 가진 레시피’가 조건이었다는 것.

연대기 구성이지만 백화점식 소개와 나열을 넘어선다. ‘역사로 읽는 요리, 요리로 읽는 역사’의 중요한 장면을 구성하는 데 몰두했다. 앞의 ‘돼지고기 탕수육’처럼.

▲4000년 전 레시피가 궁금하다면

‘음식문화의 탄생과 죽음, 부활’이라면 이해가 쉬운가. 이를 위해 저자는 충실하게 시대의 변천사를 따른다. 스타트는 빵이다. 기원전 1958년의 레시피에 등장한 고대 이집트의 빵. 그 뒤를 이어 카나수 수프, 타이거 너트로 만든 사탕류, 무화과 잎에 싼 생선구이, 소금으로 간한 햄 등이 ‘기원전 역사’를 더듬는다.

생경한 음식을 따라 내려오다가 그래도 만만하게 눈에 띄는 게 있으니 ‘파스타’다. 1154년에 쓰였다는 레시피부터 훑어보자. ‘시칠리아 트라비아에서는 밀가루를 길게 뽑아 음식을 만들었다. 양도 풍부해서 칼라브리아지역의 여러 도시, 이슬람교지역과 기독교지역에도 공급할 수 있었다.’

이게 전부다. 저자는 오로지 이 문구를 근거로 파스타를 둘러싼 역사를 증명하고 추론한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는 이미 파스타를 만드는 기술이 완전체를 이뤘단다. 양도 충분해 수출도 할 수 있었다는데. 이때 파스타 개발의 핵심은 뭐였을까. 국수처럼 길게 뽑는 것? 나비모양 혹은 벌레모양? 아니다. 바로 ‘건조’란다. 건조할 수 있다는 건 오래 저장해 주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충직한 실용성 덕에 파스타는 이후 이탈리아의 ‘국민음식’으로 기꺼이 승격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로마의 역사는 ‘소스’가 썼다

과거나 현재나 별로 다르지 않은 장면. 불 앞에서 프라이팬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유려한 손짓, 익어가는 요리를 내려다보는 진지하지만 엷은 미소. 이 연출만 상상한다면, 맞다. 책에서 가장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레시피다. 물론 제목이 대놓고 내건 것처럼 100가지 성찬은 100가지 레시피를 친절한 간판처럼 달고 있다. 그러나 이 레시피를 따른다고 해도 1000년 전, 100년 전의 그 요리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왜냐고? 당시만의 ‘정통요리법’이라서다.

저자는 굳이 그 맛과 모양대로 만든 요리를 현대의 독자에게 먹이고 싶은 의도가 없는 거다. 그래서 과거 특정 시기에 만들었던 음식을 현대버전으로 애써 번역해 소개하지 않았다. 그저 그 시대가 그 음식을 어떻게 차려냈는지를 설명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독특한 저자의 취향이기도 하겠지만 덕분에 책은 요리서보단 역사서에 훨씬 근접한 그림을 그려낸다.

예컨대 로마의 역사가 가장 빛났을 때는 목욕탕도, 콜로세움도 아닌 ‘소스가 가장 맛있었을 때’란다.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통치하던 그때 아피키우스라는 요리사가 쓴 책에는 소스 만드는 법이 무려 400가지가 들어 있었다는 거다.

▲미식 향한 질긴 열망, 끊긴 적 없다

100가지 음식 중 빠지지 않는 것은 바로 ‘미식에 대한 열망’이다. 때론 생존을 위해 때론 식욕을 위해 인류는 모든 육지와 바다를 헤집고 다니며 뱃속의 기쁨을 위한 탐구에 나섰다. 저자가 인용한 프랑스 미식가 장 앙텔름 브리아샤바랭의 표현 그대로 ‘삶을 지배하는 주체’가 미식이었던 셈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저자는 역사 속 수많은 요리사가 요리만 한 게 아니라 미식의 레시피를 세세히 남겨놓으려 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요리가 허공에 흩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을 ‘신의 사명’으로 여겼다는 거다.

옛 요리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저자는 ‘신의 사명’으로 휘어지는 요리상을 책 안에 차렸다. 깨알(?) 같은 글씨로 600페이지 한상이다. 억지로라면 시도조차 못했을 일이다. 재미있는 건 현대로 옮겨 올수록 레시피가 복잡하고 길어지는 현상인데. 사는 일이 점점 단순치 않더란 철학까지 요리법 한토막으로 명쾌하게 드러낸 셈이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어쨌든 서양음식 100색이라는 것. 아마도 저자는 동양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나 보다. ‘돼지고기 탕수육’을 제외하곤 말이다. 잘 차려진 밥상에 젓가락 보낼 곳이 없더라고 해도 할 말은 없게 됐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이런 모습 처음이야!
  • 이제야 웃는 민희진
  • 나락간 '트바로티' 김호중
  • 디올 그 자체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