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이 쏘아 올린 ‘고전(古典)의 역주행’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
러셀 셔먼 ‘피아노 이야기’
언급 직후 서적 판매량 3배 급증
고전 중의 고전 서점가 역주행
독자들에게 읽히는 이유
  • 등록 2022-07-20 오전 6:40:00

    수정 2022-07-20 오전 8:40:06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단테의 신곡(神曲)은 거의 유일하게 전체를 외우다시피 읽은 책입니다.” 이 말 한마디에 국내 출판계가 출렁거렸다.

‘고전’(古典)이 다시 읽히고 있다. 요즘 서점가에는 고전 중의 고전으로 불리는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의 ‘신곡’과 함께 음악계 고전으로 통하는 러셀 셔먼(92)의 책 ‘피아노 이야기’가 역주행하며 재조명 받는다. 피아니스트 임윤찬(18) 효과 덕분이다.

최근 반클라이번 국제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임윤찬은 대회 우승 뒤 지난달 30일 열린 귀국 기자회견에서 “2년 전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연주했는데 이 곡을 이해하려면 ‘신곡’을 읽어야 했다”며 “여러 번역본을 다 읽어 전체 내용을 외우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달 미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열린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결선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경연 모습. (사진=목프로덕션)
출판계에 따르면 임윤찬의 책 언급 이후 판매량이 확 늘었다. 2007년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 ‘신곡’을 펴낸 민음사 측은 임윤찬이 이같은 발언을 한 지난달 30일부터 근 5일 동안 전년 동기 대비 3배 가까이 판매량이 껑충 뛰었다. 임윤찬의 스승인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사사한 러셀 셔먼의 책 ‘피아노 이야기’를 찾는 독자도 부쩍 늘었다. 한 달에 50~60부 꾸준히 읽히던 이 책은 임윤찬의 우승 후 500부 이상 팔렸다는 게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은행나무 측의 설명이다.

잘 만들어진 고전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신곡’은 한 나라의 언어적 정체성을 만든 텍스트이자 전 세계인의 세계관에 영향을 미친 대작이라는 평가다. 신곡을 번역한 박상진 부산외대 교수는 ‘2015 세계문학 고전학교’의 일환으로 열린 북토크 현장에서 “단테의 작품 속에는 우리가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기본적인 문제들이 모두 담겨있다. 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시대마다 새롭게 부활한다. 시시각각 모습을 바꿔가며 그 시대에 맞는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고 의미를 부여한 바 있다.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이탈리아의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가 1308년부터 1320년까지 쓴 ‘신곡’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최고의 것’(괴테)으로 꼽힌다. 작가이자 주인공인 서른 다섯살의 단테가 살아 있는 몸으로 일주일 동안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것을 1만4233행에 걸쳐 쓴 대서사시다.

신곡(La devina commedia)의 원래 제목은 그냥 희극(commedia)이었으나, 후세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신성하다’(divina)는 형용사를 붙였다. 체계적이고 기하학적으로 저승 세계를 구축했으며, 중세 유럽의 사상과 관념, 의식 세계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걸작이다.

그런 만큼 출판사마다 단테의 ‘신곡’을 펴내 왔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곳은 열린책들과 민음사다. 두 출판사는 2007년 초판 출간 이후 지난해 단테 서거 700주기를 맞아 번역과 주석을 충실히 보완해 ‘신곡’ 개정판을 내놓거나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열린책들은 2007년 대구가톨릭대 프란치스코칼리지의 김운찬 교수가 번역한 이탈리아어 완역본에 귀스타브 도레(1832~1883)의 삽화 총 136점을 모두 수록한 ‘신곡’ 개정판을 올초 출간했다. 지옥 형벌의 온갖 참혹한 광경과 저승에서 마주친 유명한 인물들 등 도레 특유의 세밀한 묘사력과 만나 생생하게 펼쳐진다. 번역과 주석에도 완성도를 높였다. 15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신곡’ 원전을 연구하며 기존의 중역본과 개역본의 오류를 바로잡았던 김 교수는 초판 출간 후 10년 이상이 지난 것을 감안해 3000여개의 역주를 보완했다. 기존의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 3권으로 분권돼 있던 것도 한 권으로 합쳤다.

민음사는 박상진 교수의 방대한 주석을 단 ‘신곡 주해판’을 출간할 예정이다. 20여년간 단테를 연구해온 박 교수는 2019년 단테 연구로 한국인 최초 이탈리아 문학상 학술 부분을 수상한 단테 연구 부분의 권위자다.
대작 ‘신곡’을 쓴 단테 알리기에리 초상화(사진=민음사).
러셀 셔면 ‘피아노 이야기’

책 ‘피아노 이야기’는 ‘건반 위의 철학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러셀 셔먼의 음악 에세이집으로, 음악계 고전으로 통한다.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세계적 피아니스트들을 길러 낸 교육가로도 유명한 그가 피아노 연주, 음악과 교육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을 펼쳐 보인다.

“음악은 형식을 파괴하는 질문과 형식을 지키는 대답의 연속이다.” “넋을 잃은 사랑의 달콤한 향기뿐 아니라 하찮은 벌레, 심지어 은하계도 모두 피아니스트의 손안에 있다.” 셔먼은 음악가로서의 섬세함과 철학자로서의 깊이감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글을 보여준다. 책은 게임과 가르침, 상관관계, 악보, 코다 등 다섯 가지 주제로 구성돼 있으며 짧은 에세이와 아포리즘이 담겨있다.

특히 셔먼은 제자들에게 고전을 읽은 뒤 리포트를 쓰게 하고, 잡지, 신문 등을 의무적으로 읽게 해 기교 자체에 함몰되지 않도록 자신의 연주를 하게끔 이끄는 교육 방식으로 유명하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만난 40대 한 독자는 “임윤찬의 스승이 사사한 러셀 셔먼의 인문 정신이 궁금해 책을 구입하게 됐다”며 “임윤찬이 대회 때 보여준 몰입감과 절제의 힘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출판계 관계자는 “고전과 구식에는 차이가 있다”며 “수많은 작품 중 시대가 지나도 인정할 만큼 재평가되고 계속 활용될 수 있는 것들만 고전으로 남는다. 두 책은 꾸준히 읽힐 것”이라고 했다.

임윤찬의 스승인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사사한 피아니스트 러셀 셔먼ⓒMichael Lu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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