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없다

[목멱칼럼]
  • 등록 2023-08-30 오전 6:15:00

    수정 2023-08-30 오후 1:23:24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5·16 주도세력이 아닌데도 부산시장으로 발탁된 K육군소장은 능력을 발휘해 서울시장으로 영전했다. (일설에 따르면) 절대 권력자의 환심을 사려 청와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와우산 중턱에 시민아파트를 단 6개월 만에 지어내는 믿기 어려운 일을 해냈다. 그러나 준공 4개월 만인 1970년 4월 어느 날 새벽 와우아파트가 와르르 무너지며 33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그 반짝이던 금자탑이 아차 하는 순간에 탐욕의 상징인 바벨탑으로 변해버렸다. “철근 70개를 넣어야 할 기둥에 5개만 넣었다”고 보도됐는데, 빨리빨리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데다, 누군가 철근을 빼서 배를 채우려는 욕심이 합해져 인명을 하찮게 여기다 그리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당시 사회풍조로 보아 K장군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군사정부는 민심을 수습하고 정통성을 세우려 무엇이든 “하면 된다”며 가시적 성과를 재촉하고 있었다. 자유당정권에서 끝 모르는 부정부패와 열악한 주거환경에 시달렸던 국민들에게 천년을 가도 끄떡없어 보이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생각지도 못했던 꿈같은 일이었다. 강철 같이 굳세게 보이던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지리라고 짐작도 못하던 시대에 와우아파트 입주자들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 후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같은 부실건축들이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흉기로 변하는 사례가 몇 번이나 일어났는지 모른다.

반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날 국민소득이 100배 가까이 늘어났음을 생각할 때, 철근덩이의 상대적 가치는 크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철근이 들어가지 않는 “순살건축”이 진행되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젊은이들의 로망이라는 공기업에서 일어났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꿈 많은 청년들을 선발해서 불법 토지투기로 떼돈을 벌거나 철근을 슬쩍해 잔돈을 챙기는 장면을 보여줬다는 말인가. 세상에는 꼭 해야 할 일이 있고 해서는 절대 안 될 일이 있는데 끼리끼리 눈감아주는 ‘그들만의 리그’가 계속되면서 잘잘못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비리인지장애의 원인으로 작용했을 게다.

철근을 아끼는지 빼먹는지 모를 행태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벌어졌는지 파악조차 못하는 광경을 보고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부지기수다. 어쩌면 ‘비리인지장애’ 증후군은 ‘하면 된다’는 억지철학의 잔재인지 모른다. 생각해보자. 제 부모나 자식들이 거주할 아파트의 철근을 빼돌릴 간 큰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옳고 그름을 떠나 ‘하면 된다’는 생명경시풍조 아래서 남이야 어찌되든 개의치 않다보면 개인의 조그만 태만이나 사익추구가 사회의 커다란 재앙으로 변해 간다. 만연하고 있는 비리인지장애 현상이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에게 전염될까 두렵다.

21세기 세계10대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한 나라에서 공익을 위해 설립된 국민기업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이처럼 사람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무서운 행태는 한국사회 의식구조가 한계점으로 가고 있다는 공포의 시그널인지 모른다. 비리인지장애인이 최종책임을 맡고 큰소리만 치다가 “해는 지고 갈 길은 먼데, 시간 낭비하지 말자”며 흐지부지하는 구태를 발본색원해야 한국경제의 미래가 있다. 이참에 우리나라는 공기업군이 비대해지며 청년세대를 옥죌 재정적자 확대의 한 원인이 되고 있음도 고민해봐야 한다.

일하는 보람과 성취감을 소중하게 여길 때 반짝이는 금자탑이 세워지고 사회는 밝아지기 마련이다. 성경에서 탐욕이 앞서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건너가지 못할 바벨탑에 대한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해 헤맨다고 했다. 순살아파트는 건너지 못할 바벨탑을 누군가 건너가려다 벌어진 불상사다. 불가에서도 마음을 정갈하게 닦아가는 수심(修心)과 물질을 탐하는 탐물(貪物)을 대조해서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삼일 동안 마음을 닦으면 천년을 두고 보배가 되고, 백년간 탐욕으로 쌓아올린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된다”(三日修心千載寶, 百年貪物一朝塵)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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