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정규 교육 과정에서 숙명처럼 마주하는 교재들이 있다. 표준 전과(全科)와 동아 전과, 맨투맨과 성문 영어, 수학의 정석과 해법 수학.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이들 교재들은 대한민국 학생들의 지식 형성을 지배하다시피 했다.
두 전과가 양대산맥을 이루던 초등학교 시절, 시험 전날 `벼락치기`로 밤을 새는 일이 일쑤였다. 한정된 범위와 초등학교 문제 수준에서 벼락치기는 충분히 통하고도 남았다. 중학교 시절까지도 습관은 쉽게 바뀌질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성적은 선두권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 김성재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이사장과 함께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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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고등학교 진학 이후부터 생겼다. `성문`은 기본에서 종합으로, `정석` 역시 기본과 실력으로 나뉘었다. 당시 수학 교사는 종종 일본 동경대 기출문제까지 꺼내들며 주눅 들게 했다. 단순 암기 차원을 뛰어넘어 원리를 이해하고 다른 문제에도 적용하며 해석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성적은 하향 곡선을 그렸고 순위권에서도 차츰 뒤로 밀려났다. 어릴 때부터 잘못 길들인 학습 방법 탓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자율학습에 충실했다”“기출 문제를 반복해서 푼 게 도움이 됐다”는 수능 만점자들의 인터뷰는 그래서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편이다. 그건 그저 `승자의 여유`나 립 서비스 차원의 `모범 답변`이다. `비법`까진 아니더라도 `다독(多讀)·다작(多作)·다상량(多商量)`으로 대표되는 올바른 학습법이 분명 몸에 베어 있을 테다.
의견이 분분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행보가 대권 도전 쪽으로 확실히 기울었다. 기자 출신의 대변인을 영입했고 조만간 여의도 국회 인근에 캠프 역할을 할 연락 사무소도 꾸린다고 한다. 공식 정치 참여 선언은 이르면 이달 말쯤이 될 것이라고 대변인은 전했다. 지난 3월 4일 총장직을 내려놓은지 3개월여 만이다. 그간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부친을 모시고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사전투표를 했을 때와 지난 9일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여한 단 두 차례. 당시에도 정치 참여나 대권 도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거나 설명하진 않았다. 대신 정체도 불분명한 측근의 입을 통한 `전언 정치`, 각 분야 전문가들을 만난 `과외 정치``견학 정치`로 일관했다. “피하지 말고 빨리 링 위로 올라오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간보기 정치를 그만두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윤 전 총장이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한 사진과 함께 “김대중 정신은 김대중의 길을 걸으면서 체화되는 철학이지 벼락치기 공부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니다”면서 “공부는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완성된다”고 꼬집었다.
내년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앞으로 265일. 향후 윤 전 총장의 행보와 지지율을 현재로선 가늠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일국의 지도자는 당장의 인기와 정권 비판층의 지지에 심취해 노려볼 자리는 아니란 점이다. 벼락치기나 쪽집게 과외 몇 번으로 수능 만점을 탐내는 것과 다름없다 한다면 지나친 비약인가. 바야흐로 감당해야 할 `검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