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같은 삶…소설가 강영숙, 인간의 가치를 묻다

쓰레기 속 ‘버려진 아기’ 주운 청소부
저마다의 이유로 대리모가 된 두 여자
인간 고유성 시험하는 세계와의 사투
과연 우리는 인간성을 지킬 수 있을까
분지의 두 여자
강영숙|232쪽|은행나무
  • 등록 2024-01-24 오전 7:18:18

    수정 2024-01-24 오전 7:18:18

강영숙 작가가 4년 만에 새 장편소설 ‘분지의 두 여자’(은행나무)를 펴냈다ⓒmelmel chung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아기다.”

어두운 바닥에 놓여 있는 바구니 안에 흰 덩어리가 하나 있다. 그 덩어리를 감싼 흰 천은 고양이 발자국으로 더럽혀져 있다. “진짜 아기네.” 민준은 또 확인하듯 중얼거린다. 천에 싸인 채 턱에 힘을 주고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는 작은 공만 한 아기의 얼굴이 보인다. 빨리 수거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민준은 계속 중얼거리며 서 있다. “아, 겁나 하얗고 깨끗해!” 오민준은 아기를 보며 이상한 기분에 빠져든다. 보는 사람은 없는지 민준은 순간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아주 잠깐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바구니를 집어든다.(‘분지의 두 여자’ 본문 13~14쪽 중).

각자 다른 소망 속에서 ‘잉태된 아기’와 ‘버려진 아기’가 있다. 버려진 아기는 발견한 청소 용역 민준의 손에 놓여있다. 배 속의 아기는 대리 출산의 의뢰자의 선택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

소설가 강영숙(57)의 새 장편소설 ‘분지의 두 여자’(은행나무) 속 인물들이 마주한 세계는 재해 같다. 인간의 존엄과 생사가 유전자의 이름 아래 구획되고 점수가 매겨지는 ‘재난’ 같은 삶 속에서 저마다의 사투를 벌인다. 인간의 고유한 가치를 시험 당하고 자신과 쓰레기 사이의 위치를 가늠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4년 만에 신작으로 돌아온 작가는 “소설을 쓰는 동안 한두 가지 질문을 내내 가지고 있었는데 그 하나는 삶의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우리의 삶이, 삶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로 대체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상한 징후”에 집중하며 소설을 썼다고 했다. 생명의 폐기와 탄생이 엇갈리는 분지 지형의 북쪽 B도시를 무대로 인물들의 재난 같은 삶을 낱낱이 보여준다.

소설은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버려진 아이를 발견한 민준과 여기에 각기 다른 이유로 대리모가 되기를 선택한 두 여자, 진영과 샤오의 이야기가 겹친다.

대학교수인 진영은 얼마 전 딸 윤재를 잃었다. 상실감과 고통 끝에 진영은 이타적 대리모가 되길 스스로 선택한다. 타인을 위해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면 이 고통이 덜어질 거라는 믿음에서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고, 대학교수라는 이력에 의뢰인의 선택을 받는다. “나는 윤재가 죽은 후 과연 내가 했던 일 중에 무엇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나 생각해 왔어. 그래도 가장 잘했던 게 윤재를 낳은 게 아닌가 싶어. 목숨을 걸 만큼 위험했고, 그만큼 보람도 있었어. 그래서 다시 해보려고.”(본문 152~153쪽 중).

다른 한편에는 경제적 이유로 대리모가 된 샤오가 있다. 이름 때문에 조선족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그녀의 진짜 이름은 김희선. 한국인이다. 무능한 남편을 떠나 딸을 위해 돈을 번다.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하지만 샤오는 가난하다. 딸 주려고 모은 현금 300만원을 잃은 그는 브로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샤오에게 아이의 부모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식당에서 최소 3년 일해야 벌 돈을 한꺼번에 벌 수 있는 ‘십 개월짜리 단기 직업’인 것이다. “아기를 한 명 낳기만 하면 한 큐에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말,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본문 195쪽 중).

민준은 자신이 매일 만지던 쓰레기들을 생각한다. 누군가 내다 버린 것들, 쓸모없고 대체되는 것들. 그리고 버려진 아기에 대해 생각한다. 청소 용역 오민준이 아이의 생명을 손에 들고 고민하는 하루의 시간 동안, 소설은 우리에게 그것과 씨름하기를 요청한다. 작가는 이에 대해 “오민준이 아기를 어떻게 하는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보게 되는지가 작가인 내게는 매우 중요했다”고 말했다.

작가는 묻는다. 과연 재난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지, 버려진 아이를 책임질 수 있는지, 작가는 독자들에게 내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사실 아기를 버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진영과 샤오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구일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들일 수도 있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다시 뭉친 BTS
  • 형!!!
  • 착륙 중 '펑'
  • 꽃 같은 안무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I 청소년보호책임자 고규대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