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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준금리 인상은 국내적 요인이 덜합니다
국내 유명 경제분석전문가 중 한 명인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요인에 대해 “국내 인플레이션 요인보다 국외, 특히 미국의 통화 정책 변화와 맞닿아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최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요인이 통화량 증가 외 수입가격 상승과 관련 있다고 본 것입니다.
한국은행이 지난 12일 발표한 수출입물가지수를 보면 10월 수입물가지수(2015년 100 기준)는 130.43으로 작년 같은 달보다 35.8% 뛰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던 2008년 10월(47.1%)이후 13년만에 높은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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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물가의 상승은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돼 있지만, 최근 달러 가치의 상승과도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미국 연준이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시사한 이후 거의 반년 가까이 달러 가치는 올랐습니다.
달러 가치가 높다는 뜻은 (해외 물건을 살 때) 그만큼 우리가 더 많은 원화를 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같은 달러값의 석탄이나 석유를 사온다고 해도 원화로 보면 비싸지게 됩니다. 우리나라 기업이나 가계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원자재를 수입하는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달러값의 상승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고, 이는 다시 인플레이션 유발 요인이 됩니다.
美은 철저히 자국 중심입니다
달러값 상승은 다른 말로 ‘국제 달러 수요의 증가’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달러 수요의 증가는 두 가지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국내 요인과 국외 요인입니다.
먼저는 국내 달러의 수요 증가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나 혹은 1997년 우리나라 외환위기 때 등의 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에 불안감을 느낀 국내 투자자나 가계에서 달러를 찾다보니, 원달러 환율이 출렁였습니다.
경제위기를 ‘급격한 변동성이 초래하는 불안한 상황’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사람이나 국제 투자자들이나 ‘가치가 덜 하락하는 자산’을 찾기 마련입니다. 그게 바로 ‘달러’ 혹은 선진국 채권과 같은 자산입니다.
다시 말해 계절이 바뀌듯 국제 금융의 주기도 바뀌게 됩니다. ‘고수익 고위험’ 신흥국 자산을 선호하는 시기를 봄·여름이라고 비유한다면 ‘저수익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때를 가을·겨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실 연준의 임무는 미국 경제와 미국 인플레이션 관리에 있습니다. 신흥국 경제가 ‘아작’이 난다고 한들, 미국내 인플레이션 우려가 높아지면 사정없이 금리를 올립니다. 폴 볼커가 연준 의장으로 재직하던 1980년대 초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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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양이 늘어나면 물가는 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처럼 풀리는 족족 장농으로 들어가면 모를까, 소비와 투자가 활발한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돈의 양 증가는 곧 물가 상승으로 직결되곤 합니다.
실제 미국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최근 31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10일 발표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동월 대비 6.2% 상승했습니다. 5개월 연속 5% 상승 폭입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자원도 많고, 소비할 곳이 넘쳐나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이렇게 물가가 오른다는 것은, 달러가 그만큼 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글로벌금융위기와 코로나19로 잠시 잊혀졌던 연준의 역할이 다시 떠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인플레이션 파이터’입니다. 급속한 시장 변동을 우려해 1980년대초처럼 ‘무자비하게’ 올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장 예고와 실제 인상은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봅니다.
결국 추가 기준금리 인상 수순으로
‘말’이 가진 위력은 큽니다. 말 한마디로 위로가 되기도 하고, 말 한마디가 위기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우리 정치사에서 흔하게 목도되는 부분입니다.
연준은 이 ‘말의 위력’을 잘 알고 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 때는 시장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효과적으로 썼습니다. 디플레이션이 우려가 되자 ‘인플레이션 평균 2%’를 목표로 잡고 ‘이때까지 달러를 풀게’라는 신호를 줬습니다. 덕분에 시장은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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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이미 평균 2% 선을 넘는 상황까지 왔고, 디플레이션 우려는 가라 앉게 됐습니다. 연준이 ‘말을 바꿀 시점’이 온 것입니다.
시장 전문가들도 내년도에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자산매입(쉽게 말해 달러 풀기) 규모를 줄이고 제로 수준으로 만들 것입니다.
전세계가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때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신흥국 경제에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곳에 있던 자금들이 빠져나와 달러의 본산 미국으로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앉은 자리에서 ‘남의 돈’ 나가는 것을 눈 뜨고 봐야하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생각해야할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경제의 주권을 갖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은 외국, 특히 미국의 정책 변화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과 이런 상황은 전혀 무관치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미국이 내년에 금리를 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를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불확실성은 높아지게 됩니다. 이 와중에 달러값은 오릅니다. (한국 주식 시장은 달러값이 오를 때 좋았던 적이 별로 없습니다.)
집부자 싫어도 ‘퇴로’ 열어 ‘소프트랜딩’ 준비해야
내년도 기준금리 인상이 한 두차례 더 있게 된다면 우리나라 자산 시장은 어떻게 될까요? 대선 이후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된다’ 장담하기 힘듭니다. 다만 금리 상승은 대출 차주들의 이자 부담으로 직결됩니다. 가계 부담 증가를 피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눈물을 머금고 팔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그동안 내놓은 ‘중첩된’ 정책입니다. 지난 5년간 부동산 정책이 누적되면서 다주택자들은 ‘팔고 나갈 퇴로’가 막혔습니다. 진짜 급박하게 매물을 내놓아야할 시점에서 ‘세금 폭탄’을 맞아야 하는 것이지요.
한 예로 종합부동산세가 싫어 남는 집을 팔고 싶은 집주인이 있어도 고율의 양도소득세가 망설이게 만듭니다. ‘부자들이 집을 팔아 돈 버는 꼴을 보기 싫은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일 수 있지만, 지난 5년을 오면서 중첩된 부동산 규제는 자산 가격 하락기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싼값에 매물을 내놓아야 하는데, 양도소득세 아까워 버티는 집주인을 무조건 나쁘다고 매도하기 힘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족으로 더 붙여봅니다.
내년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입니다. 이에 따른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은 당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금리 인상은 곧 차주들의 부담 증가로 이어지게 됩니다. 한계 차주들은 집이든 주식이든 내놓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부동산 시장의 겨울이 올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는 이 와중에 집을 팔아 막대한 차익을 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손절’이 절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막대한 차익을 보는 사람’이 밉다고 해서 ‘손절이 필요한 누군가의 수요’를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은 한국 정부가 막을 수 없겠지만, 미래 손절 수요를 대비한 정책 입안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습니다. 보다 부드러운 랜딩(착륙)에 대한 준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