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회사채 시장, 기지개 켜나

  • 등록 2000-08-15 오후 3:07:03

    수정 2000-08-15 오후 3:07:03

지난 4월 현대그룹 문제가 불거진 이후 침체됐던 회사채 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통신회사 등 일부기업에 국한돼 있지만 BBB급 회사채 발행이 늘어나고 현대그룹이 자구안을 내놓은 다음부터는 현대계열사 채권에 대한 제한적인 매수세도 형성되고 있다. 은행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회사채 편입에 아직 소극적이지만 유동성이 보강되고 있는 투신권 일부에서는 수익률이 높은 회사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발행시장-힘겨운 차환발행 현대문제가 본격화된 4월이후에도 채권발행시장에서 회사채 비중은 월별로 20%대를 유지했다. 자산담보부채권(ABS)을 제외한 회사채 비중은 현대사태 이후 4~5%대에서 13~17%대로 오히려 늘어났다.(별도 표 "현대사태 전후 채권발행,유통시장" 참조) 회사채 발행규모도 5월 3191억원에서 6월 6483억원, 7월 8218억원, 8월15일 현재 3908억원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다. ABS와 프라이머리CBO 등을 제외한 회사채 발행도 6월이후에는 3000억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회사채 발행이 생각보다 위축되지 않았다는 것은 만기도래하는 회사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차환발행이 이뤄졌다는 것을 뜻한다. 또 5, 6월 국채와 통안채 발행이 줄어든 것도 회사채 차환발행에 도움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회사채를 외면한 유통시장 발행시장에서 회사채 차환발행에 전력을 쏟고 있는 동안 유통시장에서 회사채 거래비중은 바닥권으로 떨어졌다. 3월까지 전체 채권유통시장에서 회사채 거래비중은 20~35% 수준이었으나 4월 이후부터는 거래비중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4월 회사채 거래비중은 21%였으며 5월 17.7%, 6월 14.3%, 7월 12.3%를 기록했다. 그나마 ABS를 제외하면 순수한 회사채 거래비중은 한 자리수대로 떨어진다. 유통시장에서 회사채는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한 것. 기관투자가들이 차환발행은 마지못해 해줬지만 실제 회사채 유통시장은 마비상태에 빠진 것이다. ◇변화의 시작 회사채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에서 변화의 물꼬가 터진 것은 7월말, 8월초부터다. 현대사태이후 정부는 BBB이하 신용등급 회사채의 차환발행을 돕기위해 프라이머리CBO 발행을 촉진시켰고 기관전용 채권펀드를 조성했다. 7월말에는 투신권에 비과세펀드 상품 판매가 허용돼 채권시장의 수급구조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8월들어 LG증권과 대우증권이 잇따라 프라이머리CBO를 발행, BBB이하 채권발행에 숨통을 텄다. 동시에 국고채와 통안채로 집중됐던 기관투자가들의 채권매수세가 회사채쪽으로 이동할 조짐도 나타났다. 국고, 통안 등 무위험채권의 수익률이 급락하면서 비과세펀드 자금을 받는 투신권이 이들 채권매입에 부담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회사채 발행시장의 차별화 8월들어 발생시장에 나타난 분명한 변화는 우량기업 또는 전망이 좋은 기업을 중심으로 신규 회사채 발행이 이뤄졌다는 것. 지난 10일 SK텔레콤이 4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으며 같은날 하나로통신도 14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7일에는 신세기통신이 500억원, 8일에는 데이콤이 1000억원의 회사채를 각각 발행했다. 오는 25일에는 한통엠닷컴도 시설투자를 위해 1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한다. SK텔레콤과 같은 A급 회사채가 오랜만에 시장에 나온 것도 특이하지만 하나로통신 등 BBB급 채권이 큰 무리없이 발행된 것도 주목할만 하다. 사실 현대사태이후에도 유통시장에서 A급 회사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수요가 있었다. 주요 우량기업들이 시설투자를 마무리하면서 회사채 발행을 줄여 신규발행이 없었을 뿐이지 시장에서 A급 채권은 언제나 우대를 받았다. IMT-2000 사업자 선정과 관련, 통신서비스 회사들의 시설투자 수요가 생기면서 회사채 신규발행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유통시장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등급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성장성있는 통신기업의 회사채는 시장에서 얼마든지 소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투신권의 한 딜러는 “같은 BBB급이라도 하나로통신 회사채와 건설회사 회사채는 다르게 평가 받는다”고 말했다. ◇예전의 회사채 시장은 아니다 회사채 시장의 또 다른 변화는 기업들이 스스로 발행기법을 다양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투신권의 경우도 신용등급이 월등히 뛰어나거나 성장성이 없다면 회사채에 쉽게 투자할 수는 없다. 시가평가가 실시된 마당에 별도의 신용보강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면 신용리스크를 부담할 수는 없는 것. 이에 따라 일반 기업들도 ABS 발행기법 등을 이용, 투자자들을 유인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이달말 미주지역에서 발생할 항공운임을 담보로한 ABS를 발행, 1억달러를 조달한다. 이는 미래에 발생할 채권을 담보로 ABS를 발생하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것이다. 미래채권을 담보로한 ABS는 아시아나항공외에도 일부 해운사에서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사채는 아니지만 일부 카드사와 한국통신 등이 자산담보부어음(ABCP)이나 변동금리부채권(FRN)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도 발행수단을 다양화한다는 의미에서 시장의 환영을 받고 있다. 투신권의 한 딜러는 “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일반적인 스트레이트 본드보다는 신용보강이 이뤄진 ABS가 회사채 시장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며 “국내 기업들도 신용경색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선진적인 발행기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용경색은 풀렸나 회사채 발행시장에서 이 같은 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대다수 기관투자가들은 회사채 편입을 꺼리고 있다. 은행권의 경우 BIS비율을 맞춰야하기 때문에 회사채 투자에는 전혀 손을 못대고 있다. 투신권도 부분적으로 회사채 시장에 참여하고 있을 뿐 신용경색을 해소시킬 정도로 회사채에 적극성을 나타내지는 못하고 있다. 수급여건은 여전히 좋지 않다. 8월이후 회사채 만기상황을 보면 하반기 회사채 차환발행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9월부터는 회사채 만기가 매달 3000억원씩 돌아오고 연말에는 1조원 가까운 회사채를 상환해야한다. 전체 발행시장에서 보면 하반기 구조조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예금보험공사채 발행이 예정돼 있기 때문에 회사채 시장에 대한 구축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금융권의 신용경색이 자연스럽게 해소되지 않으면 자발적인 차환발행조차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수요측면에서도 투신권 비과세펀드가 채권시장의 새로운 수요처로 등장했지만 벌써 자금유입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리가 바다권에 근접하면서 채권형 비과세펀드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비과세펀드로 몰려드는 자금이 안정성을 추구, 국공채 펀드로 90%이상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투신권의 한 딜러는 “현대사태가 터졌을 때 기관은 물론 개인투자가들도 자신이 가입한 펀드에서 현대채권을 제외시키라는 요구를 해왔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섣불리 회사채에 투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비과세펀드가 매입할 수 있는 채권이 국공채 등 무위험채권에 국한돼 있기 때문에 회사채를 유통시장에서 직접 투자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회사채 이외에 절대금리가 높은 카드채나 공사채에 대한 선호가 여전한 것도 이때문이다. ◇시장의 변화방향 수급상황이나 시장의 구조적인 여건상 회사채 시장이 당장 활성화될 수는 없지만 중장기적으로 일정한 방향으로의 발전이 기대된다. 현대사태와 시가평가 실시를 계기로 채권투자에 있어서 리스크 관리 개념이 도입되고 신용등급의 변화에 주목하는 투자패턴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문제만해도 3대 신용평가회사에서 현대그룹 계열사의 회사채 등급을 일제히 하향조정하면서 표면화됐다고 할 수 있다. 신용등급이 앞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채권은 유통시장 뿐 아니라 발행시장에서도 찬밥신세를 면하기 어렵지만 통신서비스회사들 처럼 성장성이 있고 신용등급이 상향조정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은 발행, 유통시장에서 모두 우대를 받는다. 주식시장에서처럼 채권에 투자할 때도 기업의 재무상황이나 투자현황 등을 점검해서 우량채권을 골라 투자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은행권의 한 딜러는 “지금 시장여건으로는 국채나 공사채에 투자할 수 밖에 없지만 기관별로 수익률 경쟁을 하게 된다면 절대금리가 높은 회사채에 대한 투자를 늘려 나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은행, 투신, 뮤추얼펀드 등 채권 금융상품이 다양화될수록 수익률 경쟁이 가속화될 것이고 이는 시장수익률을 웃도는 수익률을 낼 수 있는 기관을 찾아 자금이 이동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채권 공급자(기업 등 발행자), 수요자(은행 등 기관투자가) 그리고 채권상품에 투자자하는 개인 및 기관들의 의식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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