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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 대중문화평론가] 영화음악가 한스 짐머의 첫 내한공연이 지난 7일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렸다. 짐머는 올해부터 열리는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의 출연진으로 19명의 밴드를 이끌고 내한했다.
‘다크 나이트’ 3부작을 비롯해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까지 크리스토퍼 놀란과의 작업으로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짐머는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멈추지 않는 창의력과 실험성으로 자신을 진보시켜왔다. 존 윌리엄스, 엔니오 모레코네 등 지난 세기를 대표하는 이들이 클래식적 작법에 많이 기대고 있었다면, 짐머는 록과 일렉트로닉, 익스페리멘탈의 방법론을 흡수하면서 디지털시대에도 잘 들어맞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자신의 스타일을 영화에 맞추는 것뿐 아니라 영화를 위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국 현지에서 고용한 오케스트라·합창단 세션까지 50명에 가까운 인원이 펼치는 공연이었음에도 사운드는 정교하면서도 생생했다. 연주자들의 퍼포먼스도 대단했다. 특히 무대 정중앙에서 리듬을 이끈 인도 출신 드러머 사트남 싱 람고트라, 중국 출신 일렉트릭 첼리스트 티나 궈가 그랬다.
올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코첼라 페스티벌 공연에서 다른 쟁쟁한 뮤지션을 제치고 짐머의 공연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데에는 이런 퍼포먼스적 요소도 한몫 했을 것이다. 짐머 또한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기타와 만돌린을 오가며 지휘자로의 역할 이상을 수행했다. 시각적·청각적으로 최고 레벨의 무대에서 연주한 곡은 여느 공연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영화음악을 테마로 한 공연은 보통 해당 영화의 장면을 스크린으로 상영한다. 오케스트라를 동원해야 한다는 특성상 관객의 집중도와 몰입감을 끌어들이기 위한 효과적 장치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짐머는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대신 관객 각자의 머릿속을 스크린으로 만들었다. 그가 특정한 장르와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그 시대에 맞는, 영화에 맞는 음악으로 영상을 완성했기에 가능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각각의 영화에 대한 기억은 혼재되지 않고, 오롯이 그 자체로 존재하며 현재와 공명했다. 어쩌면 짐머만 할 수 있는 공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