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수록 좋다던 뒷간이 안방까지 들어왔다 [물에 관한 알쓸신잡]

하수 처리 방법
  • 등록 2022-03-05 오후 12:20:30

    수정 2022-03-05 오후 12:20:30

[최종수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뒷간과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시대상을 반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처갓집이 멀수록 좋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뒷간이 멀수록 좋은 이유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코를 찌르는 악취와 지저분함 때문이죠.

이 속담을 만들었던 조상들은 멀수록 좋다고 했던 뒷간이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집안에 들어와 있는 걸 본다면 뭐라고 할까요?

(사진=이미지투데이)


지저분하고 악취 풍기는 화장실이 집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수세식 변기와 하수도 덕분에 악취가 사라지고 모습도 깔끔해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세계 모든 나라에서 화장실은 멀수록 좋은 시설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화장실 부족으로 거리에는 오물이 넘쳐 났고 악취가 코를 찔렀습니다. 하이힐이 거리에 있는 오물을 피하기 위해 발명되었다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이니까요.

당시 도시에서 지저분한 오물을 버리기에 가장 좋은 곳은 하천이었습니다. 도시에 있는 하천은 하천이라기보다는 오물을 버리는 하수구에 가까웠습니다.

하수도의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당시의 하수도 시설은 더러운 물을 모아서 하천으로 보내기 위한 이송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하수도와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될수록 하천으로 흘러드는 오물의 양은 오히려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천 수질오염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하수처리의 필요성을 가장 먼저 느꼈던 나라는 영국이었습니다.

영국 런던은 산업혁명으로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하수뿐만 아니라 공장폐수마저 하천으로 흘러들었습니다. 1800년대 초반부터 하수처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지만 막대한 예산 탓에 하수처리시설 설치는 지지부진했습니다.

그러던 중 당시 전 세계를 휩쓸었던 콜레라로 1854년 영국에서만 2만3000명이 사망하고 질병의 전염 경로가 오염된 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하수처리시설 설치가 본격화됐습니다.

우리나라의 하수처리 역사는 1976년 청계천 하수종말처리장이 준공되면서 시작됐습니다. 1980년대초에 10%가 채 되지 않던 하수처리율은 2020년 기준 95% 수준까지 높아져 우리나라에서 발생되는 하수의 대부분이 처리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수처리장은 하천의 수질관리에 절대적인 기여를 하고 있지만 악취와 경관 문제로 도시의 대표적인 기피시설이 돼버렸습니다. 뒷간이 그랬던 것처럼 하수처리장은 모두가 멀리 둘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하수처리장을 설치하기에 좋은 모두에게서 먼 곳을 찾기란 불가능해졌고 때문에 하수처리장을 설치할 때마다 갈등이 생깁니다.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뒷간이 화장실로 변신했던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멀리 하던 뒷간이 화장실이라는 이름으로 집안까지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뒷간이 가진 고질적인 악취와 지저분함을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뒷간이라 할 수 있는 하수처리장이 도시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가장 먼저 해결해야 것도 악취와 경관입니다.

악취와 경관을 해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시설을 지하에 설치하고 지상은 공원으로 조성하는 겁니다. 다행히 이런 방식의 접근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주민들의 반응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경기도 용인시의 수지하수처리장이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의 서울톨게이트 조금 못 미쳐 우측에 유리벽으로 만들어진 높다란 건물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수지하수처리장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건물을 전망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하에 있는 하수처리장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배출하기 위한 굴뚝입니다. 하수처리장의 지상에는 스포츠센터, 문화예술 공간이 자리 잡고 있고 근처에는 백화점도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수처리장 지하화. (이미지=최종수 박사)


뒷간이 악취와 지저분함을 해결하면서 집안으로 들어왔던 것처럼 하수처리장도 악취와 경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면서 대표적인 기피시설에서 도심의 휴식공간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하수처리장의 변신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한 게 있는데, 바로 처리하고 내보내는 방류수입니다. 우리나라 698개 하수처리장에서는 매일 2000만t 가량의 방류수를 흘려보냅니다. 청계천 유량의 약 500배에 해당하는 양이지요.

하수처리 기술의 발달로 이 물은 어지간한 하천수 이상의 수질을 유지하지만 하수처리장에서 나온 물이라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활용되는 비율은 15%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도 대부분은 하천 유지용수로 흘려보내는 것이고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로 실제 이용되는 비율은 2%가 채 되지 않습니다.

기술 발달과 인식 변화로 뒷간이 집안으로 들어오고 하수처리장이 도심의 휴식공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하수처리장에서 나온 물은 하수를 처리했다는 낙인 때문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하천으로 흘러나갑니다.

우리나라의 팍팍한 물 사정을 고려할 때 막연한 찜찜함 때문에 흘려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물입니다.

■최종수 연구위원(박사·기술사)은

△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 △University of Utah Visiting Professor △국회물포럼 물순환위원회 위원 △환경부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자문위원 △대전광역시 물순환위원회 위원 △한국물환경학회 이사 △한국방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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