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랑이 변하니?"…그런데 변하는 걸 어쩌죠?

남녀 2인극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익숙한 로맨스, 엇갈린 시간대로 풀어내
배우 퇴장 없이 사랑·이별의 희로애락 표현
15년 만에 무대…번역 공들여 공감대 높여
  • 등록 2024-01-26 오전 8:24:36

    수정 2024-01-26 오전 8:27:11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사랑에 유통기한이 있다면 나는 만년으로 하고 싶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를 보면서 떠오른 영화 대사다. 하나는 허진호 감독의 ‘봄날이 간다’에 나온 대사이고, 또 다른 하나는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에 등장했고 주성치 영화 ‘서유기: 선리기연’이 패러디한 대사다. 사랑이 변하지 않고 영원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중 제이미(오른쪽, 이충주 분)와 캐시(박지연 분)의 결혼식 장면. (사진=신시컴퍼니)
많은 창작물이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며 대중의 공감대를 자극한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를 보면서 이들 대사가 떠오른 이유는 이 작품이 기존 창작물과 전혀 다른 태도로 사랑을 다루고 있어서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사랑은 변하는 것이며 끝날 수 있다는 것을 감추지 않는다. 예상을 깬 신선한 로맨스 뮤지컬이다.

작품은 제목 그대로 두 남녀의 5년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유대인 작가 제이미(이충주·최재림 분), 그리고 가톨릭 집안의 배우 캐시(민경아·박지연 분)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첫 만남부터 운명적으로 이끌리며 사랑하고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 이후 각자의 경력이 조금씩 어긋난다. 이들의 사랑도 서서히 금이 가고, 갈등을 빚고, 끝내 이별로 이어진다.

작품의 독특한 형식이 익숙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든다. 남녀의 시간이 반대로 흘러가는 구성을 취한 것이다. 제이미의 이야기는 시간순으로, 캐시의 이야기는 시간 역순으로 보여준다. 제이미가 캐시와의 설레는 사랑을 노래할 때, 캐시는 자신에게 무관심해지는 제이미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놓는 식이다. 관객은 과거와 미래를 엇갈려 연기하는 두 남녀를 보며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중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는 제이미(왼쪽, 최재림 분)와 캐시(민경아 분)의 모습. (사진=신시컴퍼니)
소극장 뮤지컬이지만 볼거리가 알차다. 무대 뒤편에는 9개의 LED 스크린 기둥이 설치돼 있다. 이 LED 스크린에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작은 정사각형 표시가 두 주인공의 서로 다른 시간대를 표현한다. 제이미의 시간대는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캐시의 시간대는 그 반대 방향으로 표시된다. 긴 직사각형의 테이블이 놓여 있는 이중 회전 무대는 두 주인공의 심적인 거리와 변해가는 감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두 대의 첼로, 바이올린, 베이스, 기타, 피아노 등으로 만들어낸 음악도 풍성하다.

무엇보다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는 배우들의 매력이 빛난다. 배우들은 사랑하고 이별하기까지 겪는 희로애락을 퇴장 없이 9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오롯이 보여준다. 팝, 재즈, 포크, 록 등 다양한 음악 장르가 등장하는 만큼 배우들의 변화무쌍한 가창력도 귀를 즐겁게 한다.

사랑과 이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만큼 달콤한 로맨스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가 사랑을 회의적으로 그리는 건 아니다. 작품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두 주인공의 시간대가 교차하는 순간, 바로 결혼식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제이미와 캐시는 비로소 같은 시간대에서 서로 바라보며 함께 노래한다. 언젠가 끝날 수 있더라도, 사랑의 찬란함만큼은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바람처럼 느껴진다.

국내에선 뮤지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로 소개된 작가·작사가·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작품이다. 2003년과 2008~2009년 두 차례 국내에서 공연한 뒤 15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김수빈 번역가, 양주인 음악감독, 이지영 연출이 수개월에 걸쳐 번역 작업을 진행해 원작을 한층 더 한국적인 정서에 맞게 재구성해 작품의 공감대를 높였다. 공연은 오는 4월 7일까지 이어진다.

뮤지컬 ‘라스트 파이브 이어스’ 중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보여주는 제이미(오른쪽, 최재림 분)와 캐시(박지연 분)의 모습. (사진=신시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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