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봉에 오르니 바다가 숨쉰다, 용이 들썩인다

경남 통영 연화도
  • 등록 2009-04-30 오전 11:40:01

    수정 2009-04-30 오전 11:40:01

[조선일보 제공]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경남 통영시 욕지면 연화도로 출발하는 '욕지고속카훼리' 입구에서 표 받던 아저씨는 등산화며 스틱에 잔뜩 껴입은 등산복을 보고 "필요 없을 겁니다"라고 씩 웃었다. 산 좀 탔다고 하는 이들은 연화도 연화봉(해발 212m) 산행을 '등산' 축에 잘 끼워주지 않는다. 가벼운 캐주얼 차림만 갖추고도 4시간 남짓이면 충분히 오르내릴 수 있는 나지막하고 편한 연화봉은 산꾼보다는 불교 성지로 더 이름을 날린다.

연화여객선터미널에 내려 '십리골길'을 따라 연화사로 향했다. 평평한 길을 걷자 연화사가 곧 모습을 드러냈다. 휘 둘러보기만 한다면 10분이면 족할, 아담한 사찰이다. 연화사 담 옆에 뚫린 길로 나가 본격 산행을 시작했다. 잘 닦은 오르막 임도(林道)가 길을 안내한다. '내 발소리'만 들으며 천천히 오르막을 걷길 또다시 10여분, '쏴아' 하는 파도소리와 함께 왼편에 바다가 주르륵 시원하게 펼쳐졌다. 파도 가운데 점점이 떠 있는 연화도 주변의 작은 섬들은 스노클링 중인 공룡 등짝처럼, 들썩거리며 숨 쉬는 듯 생생해 보였다. '보덕암' 이정표를 따라 흙길로 들어서자 울창한 숲이 바다를 잠시 가로막는다.

연화봉으로 향하는 막바지 오르막을 천천히 오르자 연화봉 경관의 절정이라고 부를 만한, 섬 반대쪽의 초승달 같은 곡선이 모습을 드러내 탄성이 터져 나왔다. 연화봉에서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이는 섬의 동남쪽 끝은 공식 명칭 '용머리'와 걸맞지 않게 구부러진 모양이 공룡 꼬리를 연상케 했다. 진초록 구릉이 바다에서 솟구치듯 장쾌하게 굽어지다 바위들이 점점 작아지면서 주저주저 말줄임표를 찍듯 바다로 숨어드는 모양새다.

연화봉에서 땀을 식히자니 '용머리' 끝엔 무엇이 있을까, 능선을 따라 걸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정상서 용머리 쪽으로 난, 한 사람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잘 정돈된 좁은 오솔길을 왕복하는 데는 한 시간 남짓 걸린다.

같은 길로 돌아올 땐 어쩔 수 없이 손해 보는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가던' 길에 전혀 못 본 풍경이 '오던' 길에 눈에 띄었다. 백 개 가까이 바다 옆 능선에 줄지어 있는 나지막한 무덤들이었다. '이렇게 많아서야 누구 묘지인 줄 어떻게 찾나'라고 생각하며 비석도 없이 쑥으로 뒤덮인 붕분 사이를 뛰듯이 걸어 내려왔다. 돌보는 이 없어도, 이런 언덕에 묻힌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통영시 서호동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오전 6시50분·9시·11시, 오후 1시·3시(주말에는 오후 5시 추가) 배가 출발한다. 연화도에서 들어오는 배는 오전 8시30분·11시30분, 오후 1시20분·3시30분·4시50분(주말에는 오후 6시20분 추가). 편도 8300원. 문의 욕지해운 (055)641-6181

연화도 여객터미널에서 내려 '십리골길'을 따라가다 첫 번째 큰 갈림길에서 '연화사' '보덕암' 방향인 오른쪽으로 가면 연화사다. 연화사를 지나 '오층석탑'까지 간 다음 연화봉에 오른다. 연화사에서 용머리까지 왕복하면 약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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