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밟히는 사람의 길…알고가면 더 재미있는 ‘지리산길’

  • 등록 2009-06-24 오후 12:20:00

    수정 2009-06-24 오후 12:20:00

[경향닷컴 제공] 제주올레길과 지리산길의 다른 점은? 올레길은 풍광이고, 지리산길은 이야기다. 지리산길은 (길 너머의 경치도 중요하지만) 길바닥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길에는 왕부터 장돌뱅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지문이 아로새겨져 있는 법. 하여 지리산길은 알고 가면 더 재밌다.
 
▲ 지리산길의 노치에서 행정 구간. 덕산저수지를 끼고 도는 길 옆에는 하루가 다르게 벼가 쑥쑥 자란다.

지리산길을 직접 조사해 온 사단법인 ‘숲길’의 박무열씨는 “지리산길은 기본적으로 잃어버린 옛길을 복원한다는 생각 위에 역사성과 지역성 등을 모두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올레길에 비해 새 코스를 개통하는 것이 더디단다. 이를테면 조사원들이 걷기 좋은 코스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옛길에 얽힌 이야기와 의미도 찾아본다. 이후 토론을 거친 뒤, 현지주민들의 승낙도 얻어서 지리산길로 지정한다. “내 집 앞으로 사람들이 나다니는 것이 싫다”는 주민들이 있으면 물론 코스도 바꾼다.

지난해 2개 코스에 이어 최근 지리산길 3개 코스가 개통됐다. 이번에 개통된 길은 지리산길 중에서도 ‘이야기 많은 지리산길’이라고 할 만하다. 운봉읍~주천읍 14.3㎞를 걸어봤다.

일단 운봉이란 마을에 대해 알아보자. 운봉은 행정구역상 남원시에 속한다. 현지인들은 남원은 남원이고, 운봉은 운봉이라고 말한다. 한때 운봉이 남원과 겨룰 만큼 큰 고을이었다는 얘기다. 운봉은 해발 450~500m의 고원. 백두대간 지리산 줄기를 등에 지고 거대한 평원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땅은 기름져서 부농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박씨는 “일제강점기에 비행기를 최초로 헌납했다는 부자가 운봉사람이었다”고 했다. 조선시대에 운봉은 이씨 왕조의 성지였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운봉에서 아지발토란 왜구를 크게 물리쳤다. 소위 황산대첩. 이 때문에 이곳을 지나는 선비들도 승전비가 있는 고을 앞에선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춰야 했다는 것이다. 지리산이 적을 막아주고 들은 넓은 운봉들판을 놓고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가 지리산을 경계로 영토다툼을 치열하게 벌였다. 그래서 운봉 주변을 둘러싼 지리산 줄기엔 산성터만 여러 개 남아있단다. 1970년대 이후에는 수원, 밀양과 함께 벼개량사업, 소 종자개량사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 구룡치 ~ 내송마을 구간의 작은 돌탑인 사무락다무락.
길은 운봉읍을 한 번 둘러보며 시작한다. 운봉읍은 70~80년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갖춘 마을이다. 희한하게 길이 100m 남짓한 거리에 30년 넘은 이발소만 4개나 있다. 중절모를 쓴 촌로가 “에헴” 헛기침을 하고 나올 것만 같다. 마을의 모습은 80년대 중반쯤에서 딱 시계가 멈춰버렸다. 당시에서나 볼 수 있는 서체로 쓰인 녹슨 간판이 재밌다.

하이라이트부터 이야기하자면 풍경도 좋고 이야기도 많은 구간은 가장~노치~내송 구간이다.

사단법인 ‘숲길’ 박한강 상임이사는 “회덕을 거쳐 내송마을로 가는 길은 화전민들이 장보러 다니던 옛길”이라고 했다.

“남원이나 달궁에서 하루를 꼬박 걸려 회덕에 와서 하룻밤을 자고 다시 구룡치를 넘어 남원으로 갑니다. 남원까지는 꼬박 이틀이나 걸리는 길이죠. 회덕엔 예전에 주막집도 많았다고 합니다.”

회덕마을의 옛이름은 모데미. 사람들이 모였던 마을이란 뜻이다. 양반부터 장돌뱅이까지 주막이 있었던 회덕마을에서 쉬었다 갔다는 것이다.

남원장에서 돼지 새끼 한 마리 사 짊어지고 산길을 넘던 농투성이들이 나무 그늘 밑에 잠을 자다 돼지를 잃어버려 산을 헤매고 다녔다는 그런 재밌는 이야기가 많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다니던 살아있는 길이었다.

회덕마을에서 눈에 띄는 풍경은 억새로 지붕을 올린 샛집.

“원래 이 일대에선 옛날에 띠집을 많이 지었어요. 지리산에서 억새를 베어와 지붕을 얹기도 했답니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이런 집들이 많았는데 전쟁통에 불을 질러 태워버렸지요. 지금 남아있는 집은 53년 다시 지은 집이랍니다.”(박무열)

▲ 회덕마을의 샛집.
회덕에서 구룡치를 넘어 내송마을(안솔치)로 이어지는 길은 운치있는 숲길이다. 사무락다무락이란 작은 돌탑도 있는데 다무락은 담벼락이란 뜻이다. 사무락은? 조사팀은 어떤 일을 바란다는 사망(事望)일 것이라고 풀이했다. 길은 넓지도 좁지도 않다. 소나무 숲이 워낙 좋다. 사단법인 숲길의 양윤화 운영팀장은 “회덕에서 내송마을 구간은 가족들과 함께 쉽게 걸을 수 있는 추천 코스”라고 말했다.

두번째로 아름다운 구간은 노치~행정구간. 덕산저수지를 끼고 돌게 돼있는 길 옆에는 하루가 다르게 벼가 쑥쑥 커가고 있는 논이 있다. 4각형으로 딱딱 맞춰진 경지정리된 논과는 달리 고랑길이 구불구불하게 논과 논의 경계를 나누고 있다. 여기서 지리산의 능선이 빤히 보인다. 정령치를 중심으로 왼쪽이 고리봉, 오른쪽이 만복대다. 노치마을은 바로 백두대간 주능선이 지나가는 마을이다. 마을앞 도로가 대간이다. 그 길이 백두대간 주능선인지 눈 밝은 산악인이 아니면 잘 모른다.

초입의 양묘장~람천변~행정마을길은 어찌보면 단조로울 수도 있겠다. 보통 시골길이다. 마을 앞을 흐르는 조그마한 개울 같은 람천은 남해까지 간다.

엄천강으로 이어지고 다시 경호강과 만나 남강을 이루고 낙동강과 만난다. 행정마을 서어나무 숲은 한 숨 돌리고 가기 좋다. 임권택 감독이 <춘향뎐> 촬영 당시 그네 타는 장면을 찍었다고 하는데 정말 나무에 그네를 하나 걸어놓았다. 그 옆에는 벤치를 놓아 쉬기 좋게 돼있다. 요즘 농촌은 성수기 비수기가 따로 없다. 모를 심고 나면 한숨 돌릴만도 한데 아낙들은 상추를 뽑느라 정신이 없다. 지리산길. 지리산에서 한발자국을 떨어지기도 하고, 슬그머니 산자락을 밟고 지나가며 옛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길이다.

▲ 여행길잡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더 좋다. 남원역에서 운봉우체국 앞까지 10~20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닌다. 남원시외버스터미널(063-633-1001), 남원고속버스터미널(063-625-5391), 남원 시내버스(063-631-3116). 승용차는 인월까지는 대전~진주간 고속도로, 함양 IC~88고속도로를 탄다. 지리산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된다. 인월에서 운봉가는 길은 이정표가 잘 돼있다.

*여름철엔 걷기를 일찍 시작하는 것이 좋다. 운봉~회덕까지는 3시간 정도 걸리는데 대부분 그늘이 없다. 시간이 없으면 회덕~내송마을은 2시간 코스만 걷는 것도 괜찮다. 숲그늘이 좋다. 반대편인 내송~회덕코스는 힘들다. 회덕마을은 해발 520m, 구룡치는 580m, 내송마을은 220m다. 내송마을에서 가면 1시간 내내 오르막길이니 회덕에서 내송으로 가는 게 좋다. 홈페이지(www.trail.or.kr)에 코스 안내와 함께 지도도 다운받을 수 있다. 인월읍 지리산길 안내센터(063-635-0850)

*운봉~주천 구간과 함께 개통된 동강~수철 구간(11.9㎞)은 옛 선비들이 지리산 정상에 오를 때 갔던 그 옛길이 들어있다. 산길과 마을길이 섞여있다. 운봉~인월(9.7㎞) 코스는 영남대로처럼 호남의 주요 도로였다. 이성계의 황산대첩비를 지키는 비전마을, 명창 송흥록 박초월 생가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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